GSI 장학금을 두고 해보는 몇 가지의 셈
(현행 장학제도의 지급액과 장학 자격의 제한 요건에 대한 단상)
필자와 같은 파워문과 인문대 대학원생이 계산기를 두드리는 순간은 대체로 보잘것 없는 소득과 지출을 저울질 하고, 그 비교의 결과값이 양수든 음수든 어쨌든 감당할 수 있을만큼의 숫자로 수렴되도록 최선의 방안을 궁리하고 점쳐보는 경우이다. 가장 최근에 했던 셈은 도서 매입 전략과 관계된 것으로, 거창하게 말했지만 사실 이는 인터넷 서점의 할인 쿠폰을 어떻게 먹일 것인지에 대한 계산이었다. 곧 시작될 새 학기의 수업에서 읽을 도서의 구입 총액이 20만원쯤 되는 상황에서, 장바구니를 한 번에 결제하는 것은 만용에 가깝다. "N만원 이상 구매시 N천원 할인"이라는 이름으로 발급된 여러 장의 쿠폰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는, 사야될 책들의 금액을 각각 적어보고, 어떻게 조합해야 할지 신중히 고민한 뒤, 분산 결제를 할 필요가 있다.
장학금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궁핍한 대학원생에게 이같은 셈이 필요한 순간은 자주 찾아오고, 이 셈의 뒷맛은 대체로 씁쓸하다. 입이 써질 것을 알면서도 또다른 덧뺄셈을 해볼까. GSI 장학금을 받는 학생은 최소 6학점 이상 수강, 학과사무실에서 배정하는 주당 N시간의 근로, 그리고 담당 교수가 요구하는 불/규칙적 업무 수행의 의무를 가진다. 그렇다면 학생 입장에서 이같은 의무를 이행하는데 드는 최소 비용은 얼마일까? 여기 학교에서 적당한 거리가 있는 서울 시내에 거주하면서 석사과정 중인 대학원생이 있다고 치자. 이 학생은 등록금을 면제받고 월 20만원을 지급받는다. 학교에 오는 날, 이 학생은 1250원의 지하철 기본 요금에 거리와 환승 추가 등을 감안하면 왕복 차비로 최소 3000원 이상을 지출한다. 근무든 수업이든 학교에 오면 최소 반나절은 머무르기 때문에 3000천원에서 5000원 사이의 학식을 1회 혹은 2회 정도 먹게 되며, 이에 하루의 식비를 4000원, 1.5회로 계산하여 6000원이라고 하자. 수업을 듣는다면 아무래도 읽어야할 자료나 제출할 과제물 등의 인쇄비가 발생할터. 20페이지짜리 학술논문 한 편을 장당 50원에 인쇄하면 1000원이 든다. 택시를 탄 것도 아니고, 비싼 밥을 먹은 것도 아니고, 읽어야하는 수백 장의 자료 중의 극히 일부를 인쇄했을 뿐인데, 이 학생은 벌써 만원을 지출했다. 6학점 이상 수업을 듣고 그 외 각종 근무를 수행하려면 일주일 중 이런 하루는 최소 3회가 되며, 이를 4주로 계산하면 12만원이 된다. 20만원을 수령할 수 있는 조건을 정말 최소한으로 충족시키는데에만 12만원이 들고,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학교에 나와서 공부를 한다면 20만원을 고스란히 다 쓰게 되는 셈이다.
이 말도 안되는 계산을 하다보니 입이 쓴 게 아니라 눈이 촉촉해진다. 이 계산에 얼마나 다양하고 예측불가능한 삶의 비용들, 주거비, 통신비, 의료비, 기타 교육/의복/문화생활비 등등이 제거되어 있는지는 구태여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요컨대 핵심은 장학생으로서의 요건을 충족/유지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이 지급되는 장학금을 거의 소진하다시피하는 현행 수준에서 “장학금의 혜택”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활비는 커녕, 학업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사는데 자연스레 수반되는 지출들, 예컨대 수업이나 근무가 없는 날에도 연구실에 나오고, 필수 도서가 아닌 책을 추가로 사서 읽거나 외부 강연을 수강하고, 학우들과 차 한 잔을 마시기에도 턱없이 부족해서 자꾸 셈을 해야하는 금액을 지급하면서 “학업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는 학교의 주장은 학생들에게 설득력이 없다. 상황이 이런데도 어떤 교수님은 "요새 학생들은 하고 싶은게 많아서 장학금 받으면서도 과외하느라 바쁘다”와 같은 발언을 하며, 이 말에 생활비를 벌기 위해 당장 저녁에 일을 하러가야 하는 대학원생의 마음은 조용히 가라앉는다.
학업에 전념하기는 커녕 학업을 유지하기에도 충분하지 않은 금액을 지급하면서 학교는 학생의 연소득이 1200만원을 초과해서는 안된다는 조건을 추가로 내세운다. 이 1200만원이라는 금액은 또다른 셈을 하게 만든다. 우선 이 금액은 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어떻게 결정된 것인가? <강의.연구지원장학금 관리지침>에 따르면, “근로소득 연 1200만원 이상 소득자”에 대한 자격 제한 내용은 공식적으로 2019년 1월 29일 자 개정을 통해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 기준이 그 당시 어떤 기준에 의해 산정된 금액이라면 (가령, 2019년도의 법정 최저임금 N원*월 N시간의 근로 기준) 이 조건은 어째서 2020년에 새롭게 조정되지 않았는가. 조정하지 않았다면 그 결정의 근거는 무엇이며, 학교는 앞으로 언제까지 이 조건을 유지할 것인가. (2025년에도 소득 제한은 여전히 연간 1200만원일까?) “연간 1200만원”의 근거가 무엇인지, 그것이 합당한 것인지, 아니면 그것이 애초에 있었던 것인지 묻고 싶다. 나아가, 연 1200만원(월 100만원)이라는 금액이 과연 장학금의 신청자격을 자동적으로 제한할만큼의 소득 수준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든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0년 1인가구 기준 중위소득(예전의 최저 생계비)조차 월 105만원이 약간 넘는다. 그렇다면 “상식적이고 합리적으로” 셈해볼 때, 소득 제한선은 아무리해도 최소 1870만원(105만원*12개월 + 등록금 310만원*2학기) 이상은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즉, 연간 1200만원이라는 현재의 소득 제한 기준은 최소한의 생활비와 대학원 교육과정에 요구되는 비용의 규모에 턱없이 모자라며, 따라서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수준으로 상향조정되는 것이 마땅하다. 마지막으로, 현재의 <지침>은 “학문후속세대의 소양과 인격을 갖추었다고 인정되는 대학원생”으로 장학 자격을 정의하면서, 그 세부 요건으로 “근로소득 연 1200만원 이상 소득자는 제외”한다고 명시한다. 이말인즉슨, 소득 수준이 연 1200만원 이하인 학생들만이 “학문후속세대의 소양과 인격을 갖추었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 최저 생계비에도 미달하는 소득 규모가 학교 측이 “인정”할 수 있는 “학문후속세대의 소양과 인격”인가. 이 출처불분명하고 비현실적인 금액에 소위 "인정가능한" 대학원생의 소득 수준에 대한 학교의 어떤 시각이나 판단이 함의되어 있지는 않은가. 이같은 학교의 시선에서 연 1190만원을 버는 대학원생과 1210만원을 버는 대학원생 간에는 과연 차이가 있을까 없을까. 한 가지 확실한 건 있다. 전자와 달리 후자는 장학금을 신청할 수 없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대학원생과 관련한 유명한 짤이 하나 생각났다. 아마 거의 모든 대학원생이 한번은 접해보았을,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의 한 시퀀스의 캡처이다("심슨 대학원생 짤"로 검색하면 나온다). 바트 심슨이 잘라낸 꽁지머리를 뒤통수에 갖다대면서 자신이 대학원생이고 작년에 600달러를 벌었다고 말하자, 마지 심슨은 "얘야, 대학원생 놀리지마라. 그들은 단지 잘못된 선택을 한것 뿐이야"라고 타이른다. "꽁지머리"와 "연소득 600달러"로 대학원생을 정의하는 아들과, 대학원에 간 것이 잘못된 선택임을 아주 당연하게 상정하고 있는 엄마의 대화가 자아내는 쓴 웃음. 이제까지는 웃고 넘겼던 짤인데, 몇 번의 셈을 하고 난 지금은 "꽁지머리"와 "연소득 600달러"가 새삼스럽다. 생활비라고 받는 장학금이 부족해서 미용실도 못가고 결국 꽁지머리를 하게 된, 그런데도 인간답게 살 수 있을 만큼의 소득활동을 제한받는 그런 처지의 대학원생을 상상하게 되면서 괜시리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싱숭생숭함은 분명 장학금을 받는데도 여전히 생활비 걱정에 아르바이트를 놓을 수 없는, 그러나 "소양과 인격"을 잃을만큼 많이 벌어서도 안되는 기묘한 처지에 놓인 대학원생만이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일 것이다.
*J가 장학처랑 협상할 때 필요하다고 부탁해서 썼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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