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나의 화두는 quality sleep이다. 빛과 소음과 습도와 온도가 통제된 공간에서의 수면이 너무 간절하다. 에어컨이 없으니 꼼짝없이 창문과 블라인드를 열어놓고 자야하는데, 아침 네 시가 좀 안되면 건물 3층 코너에 위치한 침실을 에워싸고 있는 무성한 나무에서 새들의 힘찬 모닝 컨퍼런스가 시작되고, 방 안 세 곳의 창문 중 머리맡 창문은 하필이면 또 동향이어서 다섯 시면 이미 방이 환하다. 물에 빠지거나 샤워를 하는 축축한 꿈을 꾸다가 땀에 젖은 채 잠이 깨고, 타이머가 없는 멍텅구리 선풍기를 켜놓고 다시 잠을 청하면 두어 시간 뒤에 온몸이 뻣뻣해진 채로 기상한다.
*여기까지 쓰고 나서 학생회 인수인계를 받기 위해 학교에서 어떤 친구를 만났다. 안부를 묻는 그에게 수면에 대한 불평을 털어놓았더니 센트럴 AC가 되는 집으로 이사하면서 안 쓰게 된 윈도우 유닛을 선뜻 주겠다고 한다. 역시... 선한 청년이었어. 저녁 때 집으로 가져다 주고 심지어 설치하는데 필요한 각종 소모품까지 사서 오겠다고. 7시 반이 조금 넘어서 왔는데 저녁을 안 먹었다길래 집 앞에 식당에서 간단히 식사를 먼저 하기로. 먹다보니 호구조사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고, 그가 외동이며 엔지니어링 백그라운드가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혹시 랜덤한 레고 조각들이 들어있는 상자만 건네주면 하루 종일 혼자서도 잘 노는 그런 어린 시절을 보냈나요, 라고 물어보니 오 어떻게 아셨어요. 당신도 레고맨이었군요. 예전에 만났던 사람이 딱 그랬답니다. 이런 얘기를 나누며 배를 채우고 다시 집으로 컴백.
*박스를 뜯고 나온 에어컨은 크기는 작았지만 침실을 쿨링하기에는 충분한 사이즈. 특유의 덜덜거리는 소음마저도 반가웠다. 에어컨을 고정하고 방충망을 빼낸 창문의 틈새를 메우는데, 나는 당연히 테이프로 막아야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던 구석의 미세한 틈들을 레고맨은 남은 스펀지를 이용해 메우겠다고 했다. 그러면 저 좁은 틈에 밀어넣으려면 젓가락을 가져다 줘야 하나? 라는 의문을 머리에서 굴리고 있는데, 레고맨은 전동 드라이버의 드릴을 송곳처럼 썼다. 물건의 다면적인 용도를 발견하고 매끈한 피니시를 추구하는 레고맨들. 똥손인 나에게 없는 능력과 비전. 레고맨들은 곁에 두면 참 이로운 존재들이다. 피니시를 적극적으로 칭찬하고 감사의 음료와 후식을 대접하고 다음에 집에 초대하겠다는 인사를 나눈 뒤 에어컨을 돌린 채 씻고 몸의 물기를 대충 닦고 그 앞에 재채기가 나올때까지 서있었다.
*충분히 침실을 쿨링했다고 생각하고 에어컨을 끄고 기분좋게 잠이 들었건만, 새벽에 목덜미에 머리카락이 축축하게 달라붙은 채 또 깨버렸다. 에어컨을 보조할 수 있는, 타이머가 달린 성능 좋은 서큘레이터까지는 사야겠구나. 험난한 여름나기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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