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4일 전국 미세먼지 농도는 매우 짙었다. '하늘을 친구처럼 국민을 하늘처럼' 여기는 기상청 예보에 의하면 그랬다. (...) 도화는 목, 교진, 포, 천, 골, 굴 등의 이름을 외웠고 각 도로의 특징과 이력을 파악했다. 그리고 자신이 이해한 것을 간명하게 요약해 세상에 전했다. 도화는 자신이 속한 조직의 문법을 존중했다. 수사도, 과장도, 왜곡도 없는 사실의 문법을 신뢰했다. 이를테면 '내부순환로 홍제 램프에서 홍지문 터널까지 차량이 증가해 정체가 예상된다'거나 '올림픽대로 성수대교에서 승용차 추돌사고가 났으니 안전운행 하시라'와 같은 말들을. 더구나 그 말은 세상에 보탬이 됐다. 선의나 온정에 기댄 나눔이 아니라 기술과 제도로 만든 공공선. 그 과정에 자신도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에 긍지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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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마지막 날 정말 오랜만에 읽었던 우리말 문장. 몸이 안좋아서 뜨신 라떼 한 잔 사먹자고 간 동네 단골 카페에 사람이 우글우글.

카페에 구비된 책무리에 새로 추가된 김애란 신간 단편집을 들고 매장 밖 벤치에 앉아 읽었다. 안에선 커피가 나온것도 모르고. 

빨리 다 끝내고 어디로든 혼자 여행가서 읽고싶은 책만 양껏 읽고 싶다. 


<<바깥은 여름>>이라던 책 제목은 사실 창 밖의 무더위와 매미 소리와 녹음을 함께 보자는 제목이 아니었다. 외려 김애란의 지난 여름들은 영영 바깥에만 머무르는, 내 안으로 스며들어 나를 덥히지 못한 채 흘러가버리는 계절들이었나 보다. 책을 다 읽지는 못했지만 내리 읽은 세 편은 전부 무겁고 깊은 슬픔에 푹 절여진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하루종일 가을비가 내리는 오늘, 맨투맨을 처음으로 꺼내입었는데 그것도 모잘라 그 위에 후드 집업을 덧입었다. 그래도 춥다. 

여름은 저만치 가버린지 이미 오래고, 12월 26일 같은, 활력은 시들고 공기는 뿌연 날들이 점점 빠르게 가까워져 온다. 




<예술가들>

우리는 같은 직업을 가졌지만
모든 것을 똑같이 견디진 않아요.
방구석에 번지는 고요의 넓이.
쪽창으로 들어온 별의 길이.
각자 알아서 회복하는 병가의 나날들.

우리에게 세습된 건 재산이 아니라
오로지 빛과 어둠뿐이에요.
둘의 비례가 우리의 재능이자 개성이고요.

우리에게도 공통점이 있죠.
죽고 싶은 순간들이 셀 수 없이 많다는 것.
우리 중 누군가는 분명 요절할 테지만
정작 죽음이 우리를 선택할 땐
그런 순간들은 이미 지나친 다음이죠.

버스 노선에 없는 정류장에 내려서
주변을 둘러볼 때의 어리둥절함.
그게 우리가 죽는 방식이라니까요.
보험도 보상도 없이 말이에요.

사랑? 그래, 사랑이요.

우리는 되도록 아니 절대적으로
사랑에 빠지지 말아야 해요.
검은 수사학, 재기 어린 저주, 기괴한 점괘.
우리가 배운 직업적 기술이 사랑에 적용된다면……
상상만 해도 소름 끼치지 않나요?

옛날 옛적 어느 선배가 충고했죠.
그대들이 만에 하나 사랑에 빠진다면
동백꽃이 지는 계절에 그러하길.
그것은 충분히 무겁고 긴 시간이라네.

간혹 우리 중 누군가 사랑에 빠졌다는 소문이 들려요. 
그러곤 아주 끔찍한 일이 생겼다는 뒷이야기도요.
우리의 사랑은 사내연애 따위에 비할 수 없어요.
버스 종점에 쭈그리고 앉아 영원히 흐느끼는 이.
이별을 하면 돌아갈 집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이.
그 사람이 버림받은 우리의 처량한 동료랍니다.

노동? 그래, 노동이요.

마지막 파업 때 끝까지 싸운 이는
노조 간부가 아니라 연극반원이었다네요.
그가 경찰에게 몽둥이로 얻어터질 때
세 명의 피 흘리는 인간이 나타났다네요.
그중에 겨우 살아남은 이는 조합원이고 죽은 이는 햄릿이고
가장 멀쩡한 이는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조차
못 외우는 초짜 배우였다네요.

남들이 기운차게 H빔을 들어 올릴 땐
저만치서 뒷짐을 지고 콧노래나 흥얼거리지만
우리는 사실 타고난 손재주꾼이랍니다.
공장 곳곳에 버려진 쇳조각과 페인트로
불발의 꽃봉오리, 반기념비적인 바리케이드,
죽은 동지들의 잿빛 초상화를 담당하는 건 언제나 우리 몫이죠.

우리는 큰 것과 작은 것 사이
이를테면 시대와 작업대 사이
그 중간 어딘가에서 길을 잇고 길을 잃어요.
고통에서 벗어나는 건 고통의 양을 줄이는 것이 아니에요.
그건 뭔가 다른 세상을 꿈꾸는 거라고요.
우리는 벤담의 공장에서 자발적으로 해고됐다고요.

우리는 이력서에
특기는 돌발적 충동
경력은 끝없는 욕망
성격은 불안장애라고 쓰고
그것을 면접관 앞에서 깃발처럼 흔들어요.
그리고 제 발로 문을 박차고 걸어 나오는 거에요.
의기양양하게 그리고 지독히 외롭게.

우리의 직업 정신은 뭐랄까.
살고 싶다고 할까. 죽고 싶다고 할까.
아니면 조금 유식하게 해방이라고 할까.
네, 압니다. 알고말고요.
우리가 불면에 시달리며 쓴
일기와 유서는 지나치게 극적이라는 것을.

생존? 그래, 생존이요.

언제부턴가 우리의 직업은 소멸하고 있어요.
죽은 노동이 산 노동을 대체하는 동안
얼마나 많은 동료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는지.
모든 공문서에서 우리의 이름 위엔 붉은 X자가 쳐져요.

기억? 그래, 기억이요.

나는 우리에게 벌어진 일을 잊지 않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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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보선 시인의 세번째 시집, <<오늘은 모르겠어>>가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바로 주문. 시집을 소설처럼 읽는건 사실 좋은 독서방식이 아닐텐데, 나는 늘 그런식으로 읽어버린다. 두세번쯤에 다 읽어버리고, 한동안 버려두었다가 다시 펼쳐서 응, 이런게 있었던가? 하는. 어쨌든 이번 시집도 그렇게 읽었고, 아련한 비애와 쿡쿡 웃게 만드는 다정함이 공존하는 그의 시는 여전히 나에게 묘한 위로를 준다. 각자의 회복 속도를 존중하고, 일기와 유서의 지나친 드라마틱함을 결코 비웃지 않는, 버림받은 사람들과 해고된 사람들을 기꺼이 우리라고 부르고, 이들에게 벌어진 일들을 잊지 않으려 쓰고 또 고치는 시인. 낭독회 같은 이벤트도 하는 것 같던데, 못가는 내 처지야. 되짚어보니 M과 갔었던 낭독회가 벌써 6년 전이구나. 6년밖에 안 됐나. 6년이나 되었나. 그 6년은 어떻게 흘러갔나. 이런 생각하다보면 잠은 또 다 잔거지.   







      "Time, in Whales"
Our legs of yellow skin next to one another,calves spread, I think of beached whales, the arcs of their bellies,clean and gleaming. A whale would lie in the shapeof something cold, the body sipping on itselflike a drain. Gravity sucks a whole whale onto sand.You study Korean, whispering, Murorŭda, murorŭda,meaning, literally, Water rises, but really meaning to improve orto rise in sap, in springtime trees. Come spring, it will be your birthday.We will have seaweed soup, supply our blood with oxygen.Do you know that Koreans do that, because, hundreds of years past,they saw whales eating seaweed after giving birth?You cross your legs, their hair black and coarse like my father’sand my grandfather’s across the ocean. And do you know that whales have hair?Perhaps a sign of their past, when they walked the earth?Summer of years past: your father across the same ocean to bring youto America, where you would grow up speaking a languagedifferent from mine. Do you know that whales, too, detect where one another comes fromthrough song? That music I hear is yours and ours. Murorŭda.Murorŭda. Water rises. Whales die in this year’s hot winter.Your father has told you of the summer, the dank heat.Your foster mother ran after you, you already asleep in your father’s arms,wailing your name. You will not be called by that name the next dayand years will pass by. But when you’re ten you will write about that storyand spell “wail” as the animal, whose breath is a distance, spouting steam,the great animal that becomes crushed by air and sprayed with wordsMan’s Fault. And yes, so perhaps the world will end in water, taking with itall loving things. And yes, in grace. Only song, only buoyancy. You rise nowwhispering, Murollida, murollida. Meaning, literally, to raise water,but really meaning to bring water to a boil.



     시간, 고래에 담긴 (번역 by me)
누르스름한 피부로 싸인 다리들이 종아리를 쭉 뻗은 채 나란하나는 해변에 밀려온 고래를 생각한다, 그들의 배가 만들어낸 곡선,깨끗하고 반짝이는. 고래는 무언가 차가운 것의모양으로 누워있다, 마치 배수구처럼자기 몸을 조금씩 빨아들이면서. 중력은 고래의 전부를 모래로 파묻는다.너는 한국어를 공부 중이다, 물오르다, 물오르다를 속삭이면서그건, 문자대로라면 물이 상승한다는걸 가리키지만, 사실은 나아지다 혹은봄철의 나무에, 수액이 차오르다를 뜻해. 봄이 되면, 네 생일이 오겠지.우리는 미역국을 먹고, 피에 산소를 공급할 거야.한국인들이 미역국을 먹는 이유가, 수백년 전,새끼를 낳은 고래가 미역을 먹는 걸 보았기 때문이라는 거 알아?너는 다리를 꼬고, 다리의 털은 저 대양 건너편에 있는내 아버지의 것, 내 할아버지의 것처럼 거칠다. 그런데 고래도 털이 있는거 알아?아마도 과거의 흔적이겠지, 그들이 땅을 걷던 시절의.수년의 여름 , 너의 아버지도 같은 대양을 건너 이리로 너를 데려왔어네가, 나와는 다른 언어를 말하며 자라난 이 곳미국으로.  고래도, 서로가 어디서 왔는지노래로 구분하는 거 알아? 내가 듣는 그 음악은 너의 것이기도 하고 우리의 것이기도 해. 물오르다.물오르다. 물이 상승하다. 고래는 일년 중 이 더운 겨울에 죽는다. 네 아버지는 그 해 여름에 대해 말했었지, 그 습했던 열기.네 이름을 울부짖으면서, 너의 양모는 너를 쫓았지만너는 네 아버지 팔에 안겨 이미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너의 그 이름은 불리지 않았고 그대로 몇 년이 흘렀다. 그러나 열살이 되자 너는 그 이야기에 대해 쓰고,그 동물의 철자 대신 "울부짖다"적는다. 먼 곳까지 닿는 숨을 쉬고, 증기를 내뿜는,공기로 인해 쭈그러지고 인간의 탓이라는 말이 휘갈겨진,그 거대한 동물. 아, 맞아. 아마 세계는,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끌어안고물에 잠길지도 몰라. 그리고, 그건 우아할거야. 오직 노래, 오직 부력만이 있을 뿐. 너는 이제 물올리다, 물올리다를 속삭이며 일어선다. 그 말은, 문자로는 물을 올리다지만, 사실은 물을 끓인다를 뜻하지.




사진 출처: We Resist



요새 너무 덕질만 하고 공부도 안하고 책도 안 읽고 영화도 안보고 하는 것 같아서 주말 내내 반성했다.... 라고 쓰고 싶지만 이건 거짓부렁이다. 반성이라고 해봤자 물론 인터넷하고 음악 듣고 티비 다 보았다. 그래도 오랜만에 뉴요커에 들어가 글을 몇 편 읽었으며, 그러다가 글쓴이가 한국인스런 이름을 발견하고 클릭해보았는데 시가 너무 아름다워서 블로그에 옮겨온다. (원래 페이지로 가면 시인의 낭독도 들을 수 있다!윤정민 시인이라고 불러야 하나, 아니면 에밀리 윤이라고 해야하나. 여튼 구글링 해보니 시카고 대학에서 박사 과정 중이시고 시도 계속 쓰시는... 공부만으로도 엄청 빡셀텐데 그 와중에 창작활동까지 이렇게 해내는 대단한 분이셨다. 리스펙트. (나샛기 반성할 마음 안드냐? 제발 정신차리고 공부 좀 해...)


한 열흘 간 굳어있던 뇌를 조금 풀기 위해, 그리고 공부를 안했다는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기 위해 한국어로 옮겨보았는데 역시나 시 번역은 참 어렵다. 그래도 말과 호흡을 고르면서 간만에 텍스트를 깊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네. 


감상을 정돈해서 적기에는 힘들고 그냥 아름다운 점만 주절주절 적어보련다. 물을 오르며, 물을 올리며 숨을 쉬는 고래. 때로는 울음처럼 들리는, 먼 데서 들려오는 그들의 숨소리. 고래의 털은 그들이 한 때 우리같은 포유류였다는 증거. 같은 피부에 싸여 네 다리와 나란히 펼쳐져 있는 내 다리. 하지만 우리는 서로 다른 언어를 말하네. 그 옛날, 우리 아버지와 우리 할아버지가 있는 저 바다 너머를 건너온 너. 이제서야 한국어를 배우는 네가 건너야 할 언어의 바다는, literal한 의미와 real한 뜻 간에 놓여있는 사이만큼이나 넓거나 혹은 고래의 등처럼 검푸르다. 나는 너를, 너는 나를, 노래를 통해 서로 발견해낸걸까? 이같은 조각들이 어우러져있는 시는 자그마한 방 안에 함께 하고 있는 두 사람의 풍경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transoceanic한 공간을 파도처럼 오갔던 수만 세기의 시간을 불러내고, 이 너무도 자연스러운 흐름과 연결과 공존의 공감각이 바로 이 시의 매력인것 같다. 무엇보다, 우리가 생일에 미역국을 먹는 이유가, 고래가 미역을 먹는 것을 예전의 누군가 보았기 때문이라고? 세상에 너무 멋지잖아! 오직 노래, 오직 부력만이 존재하는 물의 세계를 우아하게 유영하는 고래들. 미역을 먹고 피를 만들어내며 억겁의 시간을 통과해온 그들은 우리의 조상이었던 걸까. 그렇다면 네가 건너온 그 깊고 넓은 바다는 어쩌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을 것이다. 왜냐면 그 곳은 고래가 사는 세상이니까. 물을 오르며, 물을 올리며. 울부짖으며.



*고래와 관련해서 찾아보니 beached whale이라는 표현이 왕왕 쓰이네. 그런데 과학자들도 왜 고래가 뭍위로 올라오는지 그 이유를 아직 못 밝혀냈다고.


**고래가 땅에서 죽는 이유는 단순히 숨을 못 쉬어서가 아니라, 부력이 사라지면서 그의 폐가 몸무게로 인해 바로 짓눌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시인은 공기에 의해 쭈그러지고, 중력에 의해 모래에 파묻히는 고래의 죽음을 정직하게 묘사하고 있는 셈이다. 


***Man's Fault라는 말은 실제 영국 해변에 죽어있던 고래들에게 탈핵운동가들이 스프레이로 써넣었던 구호라고 하네. 시인은 이 이미지에서 시를 시작한걸까. (아니면 you 같은 사람과 in relationship 중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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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가 듣고 싶은 찬사 중에는 이런 것이 있다. “당신의 글을 읽기 위해서 그 작품들을 봤어요.” 내가 김혜리에게 하고 싶었으나 아직 못 한 말은 이것이다. “당신처럼 써보고 싶어서 영화를 제대로 보기 시작했어요.” 그의 글은 다음 네 요소로 이루어진 예술작품이기 때문이다.

    첫째, 분석. 분석이란 본래 해체했다가 재구성하는 일이어서 작품에 상처를 입히기 십상인데 그가 우아하게 그 일을 할 때 한 편의 영화는 마치 사지가 절단되어도 웃고 다시 붙으면 더 아름다워지는 마술쇼의 주인공처럼 보인다.

    둘째, 인용. 그의 말이 지나치게 설득력이 있어 괜히 반대하고 싶어질 때쯤 되면 그는 그가 검토한 해외 인터뷰나 영화평들 중에서 중요한 코멘트를 적재적소에 인용해 독자로 하여금 이 영화의 모든 관계자들이 그의 글을 지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셋째, 비유. 그가 개념적, 논리적 서술을 훌륭하게 끝낸 후에 정확한 문학적 비유로 제 논지를 경쾌하게 재확인할 때면 그의 글은 매체(영상과 문장) 간 매력 대결의 현장이 되는데 그는 결코 영화를 이기려 들지 않지만 그렇다고 지지도 않는다.

    넷째, 성찰. 그는 영화 서사에 잠복돼 있는 ‘윤리적’ 쟁점에 극히 민감한데 그럴 때마다 특유의 실수 없는 섬세함을 발휘해 현재로서는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최선이 이것이겠다 싶은 결론을 속삭여주곤 한다.

    세상에는 객관적으로 잘 쓴 글들이 많지만 김혜리의 글이 내게는 주관적으로도 그렇다. 그의 어휘, 수사, 리듬 등에서 나는 나를 거슬리게 하는 그 어떤 것도 발견해내지 못한다. 그는 나의 전범 중 하나다. 나는 그냥 잘 쓰고 싶은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사람처럼’ 잘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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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 기자의 새 책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에 실린 신형철 평론가의 추천사. 과연 김혜리 기자의 글만큼이나 빛나는 단정하고 정갈한 글이다. 무엇보다도 좋은 비평의 요소란 정말로 저 네 가지가 아니던가. 비평이 하나의 집이라면 분석과 인용, 비유와 성찰 저 네 기둥 중 하나만 빠져도 무너지고만다. 또 그중에서도 마술쇼의 주인공이라는 저 비유가 참 좋다. 비평이라는 권력을 남용하지 말것. 함부로 대상을 난자하고 제멋대로 파헤치지 말것. 깨진 조각과 찢어진 살점을 조심스레 주워담을 것. 결국 비평의 목적은 대상에 대한 "정확한 사랑의 실험"이니깐.




<기억하는가>


기억 하는가

우리가 만났던 그 날

환희처럼 슬픔처럼

오래 큰 물 내리던 그 날


네가 전화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네가 다시는 전화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평생을 뒤척였다



<기후>


겨울은 왜 이렇게 추울까 네가 물었고
겨울은 겨울 대답해주었다
그 말을 듣고 너는 조금 우는 것 같았는데
우는 게 아니라고 그랬지

겨울에 울면 눈에서 눈이 내린다고
눈물눈 눈물눈 눈물눈 놀려대면서

어째서 나는 그렇게밖에 말해주지 못하는 걸까 생각하면서도
겨울이 추워야 하는 이유를 생각하고
길에서 자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봄이 오겠지
따뜻해지겠지 물을 때
벽지라도 따뜻한 색으로 바꿔볼까 말하지 못하고
세상에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있겠어 말하고 있었지
기온은 높지만 바람 때문에
체감온도가 낮을 거라고 말해주던 날에 
얼음을 밟았는데 얼음이 갈라지고 있었다
그때부터 조금씩 달라졌던 거 같다

조금씩 따뜻해지는 것 같다고 오늘은 말해주고 싶었는데
체감온도가 너무 낮았고
길에서 자는 사람들을 생각하자는 생각으로 돈을 조금 드렸지
고맙다고 손을 잡아주었는데 손이 까맣고
힘이 세서 붙잡고 싶었나 보다
붙잡고 싶었나 보다 생각하면서도 손이 까매서
한참 동안 손을 씻었다 한참을 손을
거울은 못 보겠더라

그때부터 조금 달라졌던 거 같다
계속 거울을 보지 못했던 거 같다

젖어 있어서 손이 시렸어 손이 시린데 나의 손만큼만 손이 시린 거야
추워보자고 좀 추워보자고 발가벗고 바람을 맞아봐도
나는 자꾸 나의 몸만큼만
추운 것이다 자꾸 나의 몸만큼만

그때부터 달라졌던 거 같다

그때부터 너의 추위를 느껴보고 싶었지 그때부터
너의 추위를 느끼고 싶어서
떨면서 자고 있는 너를 안았는데

자꾸만 따뜻해지는 것이다 자꾸
따뜻해지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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