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실이 벌어졌고, 애도가 쉽지 않다. <벌새>에서 영지 선생님이 은희에게 일러준 말을 온몸으로 발버둥치면서 살아가는 날들이 이어지는 중이다. 요가를 하고, 요리를 하고, 피아노를 치고, 일기와 편지를 쓰고. 모두 손가락을 움직이는 행위다. 요가의 많은 동작은 손가락을 펴고 바닥에 단단히 붙이는 것을 요구한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해가 뜨기도 전에 눈이 떠지면 거실에 매트를 펴고 아주 천천히 스트레칭을 하다가 동쪽으로 나있는 창을 보고 태양경배를 연습한다. 끈기가 없는 성격과 그렇게 좋게 타고나지 못한 신체의 협응력 때문에 발전이 더디지만, 어느 날 발가락을 굴리고 허벅지를 바닥에 닿지 않게 차투랑가에서 업독으로 이어지는 동작에 드디어 성공했다. 불안과 슬픔과 무력과 절망 가운데 가끔씩 찾아오는 기쁨과 희열과 성취의 순간. 씹고 넘기기에 제법 힘이드는 채소들을 토막내고 채썰어서 차곡차곡 냉장고를 채운다. 손끝이 주황색으로 물들만큼 당근을 먹고 아삭아삭 소리로 내 고막을 채우기 위해 셀러리를 씹다보면 턱이 아프다. 20+@년만에 피아노를 다시 치기 시작했다. 피아노를 칠 수 있도록 개방된 공간을 다행히 발견했다. 얼마나 행운인지. 조율이 상당히 많이 필요하지만 그래도 스타인웨이 그랜드 피아노다. <괴물>의 엔딩 크레딧에 흐르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Aqua로 시작했고 (폭풍이 지나간 뒤에는 무엇이 남을까? 새로 건설해 나가야 할 삶의 각본은 과연 무엇일까?), 베이직 중의 베이직인 모짜르트 피아노 소나타로 넘어갔다. 또랑또랑한 박자에 맞춰 왼손과 오른손을 부지런히 움직인다. 알레그로를 지키지는 못해도 스타카토와 트릴, 피아노와 포르테를 흉내내면서 손목과 손가락 끝에 힘을 풀었다 놓았다 하다보면 한 시간도 훨씬 넘는 시간이 훌쩍 흐른다. 등받이가 없는 딱딱한 의자 때문에 엉덩이가 얼얼하고 허리가 뻐근해진 것을 느끼며 연습실을 나온다. 며칠 전에는 일기장을 뒤적여보다가 이 곳에 와서 1년 반 동안 쓴 일기보다 최근 2달여 간 동안 쓴 일기가 더 많음을 깨달았다. 하루종일 나를 어떻게 몰아쳤는지를 적어내려간 뒤, 비슷한 말들의 행렬로 마무리되는 엔트리들. 그 선두는 대체로 이렇다. 슬프다, 화가 난다, 어떻게 해야할까, 울었다, 울고싶다, 소리를 지르고 싶다 (한번은 텅 빈 길에서 소리를 진짜 질렀다. 고래고래고래고래고래고래고래고래), 잠을 자고 싶다, 얕은 잠을 잤다, 꿈을 꿨다. 쏟아진 혼란의 말들은 이내 이것을 매만지는 범박한 말들의 반복으로 마무리 된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다 괜찮아질거야. 밤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등등. 기도처럼, 주술처럼, 몇 번을 반복해서 적고 소리를 내어 읽는다. 편지와 메일을 많이 쓰고, 보내고, 보내지 못한 말들은 지우고 찢었다. 단시간에 적어내려간 것도 있고, 며칠을 울면서 쓰기도 했다. 몇 달을 주저했던 메일을 보낸 뒤 다정한 답신을 받고나서는, 오랜 시간 주저했던 내 마음이 다 불필요했음을 깨닫고, 앞으로 좀더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겠다고, 쓰고 싶은 마음이 들면 지체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물론 아직도 잘 지켜지지는 않는다. 짧은 기쁨과 긴 슬픔이 아주 단단하게 뒤섞이고 엉켜있는 겨울을 보내고 있다. 그래도 타래를 조금씩 풀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한다.  

 

 

*

어제 밤에는 요새의 나를 이렇게 분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요가를 한다. 걷는다. 새를 본다. 피아노를 친다. 음악을 듣는다. 요리를 한다. 일기를 쓴다. 편지를 쓰고 부친다. (혹은 지우거나 찢는다.) 책을 읽는다. 전화를 건다. 술을 마신다. 심호흡을 한다. 

 

눈물이 난다. 화가 난다. 무력하다. 비관에 잠긴다. 충동이 든다. 

 

내가 주어인 말들이 한 편에 있다. 다른 한 편에는 내가 주어가 아닌, 그러니까 나를 찾아왔다가 떠나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들이 있다. 이 양 편의 완벽한 분리는 불가능하지만, 한 편을 부지런히 실천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도록 그 벽을 두텁게 다지고 쌓아올린다. 

 

 

*

두 달 동안 살이 4킬로 빠졌다. 까마귀(두루미) 자세를 몇 번 시도해보았다. 앞으로 고꾸라질 때 으악하고 외마디 비명이 나오지만, 다치지않으려고 놓아둔 쿠션에 그 소리가 묻힌다. 내 몸을 내가 들어올리기란 얼마나 어려운가를 절감한다. 이왕 이렇게 된거 조금 더 몸을 가볍게 만들고 동시에 힘은 더 기르고 싶다. 생각해보니까 이거 성공하면 나 잠깐 새가 되는거네. 까마귀든 두루미든, 모두 날개를 크게 벌리고 하늘을 나는 친구들이라는 점이 마음에 든다. 

 

 

*

수요일. 발렌타인 데이. 아침부터 기분이 싱숭생숭했는데 계속 말을 거는 상대방. 애매한 대화를 나누다가 결국은 상대가 먼저 무너진다. 나도 침울해진 상태로 티칭을 하러 갔다. 수업의 정식 첫 리딩인 "Crying in H Mart"를 읽고 와 의견을 나누는 날이다. 이니셜 리스펀스를 간단하게 디스커션 시키고, 돌아가면서 얘기한 내용을 듣고, 내가 텍스트에 대해 이런저런 렉처링을 한 뒤, 프롬트를 주고 exit ticket으로 라이팅을 시키는 구성. 세팅을 끝내고, 수업 시작을 기다리면서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애들 앞에서 인사말을 고르고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차오르는게 느껴졌다. 황급히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밖으로 나가는데 J의 말이 떠오른다. "열여덟 살짜리 애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것, 당황스럽지만 한편으로는 엄청나게 아름답고 용기 있는 일 아니니." 웃음이 피식났다. 코로나에 걸려서 회복 중인 J에게 "해피 발렌타인! 몸은 좀 어때? 다 나으면 우리 또 만나"라고 메시지를 보내면서 진정을 하고 교실로 돌아갔다. 애들에게 내가 오늘 수업하다가 울어도 너무 놀라지마, 한국 음식이 잔뜩 나오고, 엄마와, 상실과, 애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하잖니, 라고 농담 같은 진담을 던지면서 수업을 시작했다. 원래도 이 텍스트를 읽을 때는 리딩하고 연결되어 있는 작은 간식을 퀴즈 식으로 준비해서 애들과 나누는데, 이날은 날이 날인만큼 초콜렛까지 얹었다. 두 쌍의 젓가락이 국수가락을 나란히 붙들고 있는 책의 커버디자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새로운 해석이 자연스럽게 떠올라서 그걸 덧붙였다. 느리고 작지만 그래서 소중한, 깨달음이 넓어지고 깊어지는 순간들. 수업을 하다가 결국 코끝이 시큰해지는 순간이 있었다. 애들이 눈치챘을까? 뭐 어때. 그렇게 티칭을 무사히 마치고, 곧바로 이어지는 수업을 무사히 듣고, 해가 다 졌고 바람이 너무 찼지만 걸어서 집으로 왔다. 그리고 어제 밤. 한 학생이 메일을 보냈다. 수요일 수업 너무 좋았다고. 자기가 그날 기분이 안 좋았는데, 수업 덕분에 기분이 나아졌다며 고맙다는 메시지. 나도 고마워. 작고 사소한 제스처들이 얼마나 큰 힘을 갖는지 새삼 실감했다. 

 

 

*

며칠 내내 바람이 차갑고 매섭다. 봄은 쉽게 오지 않아.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흔들리는 거실 밖 창문을 보다가 뭔가 파랗고 동그란 것들이 그 사이를 부지런히 옮겨다니고 있음을 느꼈다. 벽에 붙여놓은 동네 새들을 그려놓은 포스터를 재빠르게 훑어서 그 친구들의 정체를 파악한다. Eastern bluebird구나. 실내복을 입은 채 슬리퍼를 신고 집 밖으로 나간다. 극성맞은 청설모들 때문에 자꾸 자리를 옮기는 파랑새들의 사진을 멀리서나마 찍고, 얼어붙은 손가락을 비비고 온몸을 떨면서 집으로 들어온다.  

 

 

*

내 삶이 어딘가에는 분명히 연결되어 있고, 내가 결코 알 수 없는 컨티뉴엄과 그물망에 위치해있음을 깨닫는 에피파니의 순간들. 우연히 접한 텍스트나 음악, 글을 파고 들어가다가 그것이 내 삶의 어떤 지점과 다시 만나는 연결점을 발견할 때. 그러니까 지난 학기에 그냥 흥미로 빌렸던 오래된 책에서 페이퍼에 써도 될만한 작가를 발견해서 꾸역꾸역 뭔가를 써서 냈는데, 그 작가를 다시 이번 학기 수업에서 정식으로 만난다던가. 예전에 읽고 인스타 스토리에 올려뒀던 어떤 책의 이름과 저자가 갑자기 간절해졌지만 키워드 조차 생각이 나지 않아 이틀을 고생하다가, 드디어 다시 찾게 되었고, 마침 그 작가의 새 책이 2월 말에 출간된다는 것. 신기해. 

 

 

*

동네 카페에서 이 긴 일기를 쓰고 있는데 P가 저쪽에서 인사를 한다. 꼭 끌어안고 안부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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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차의 새 학기, 첫 주, 캠퍼스에서의 일정이 끝났다. 몇 달 간 텅 비어있던 동네와 학교에 갑자기 넘실대는 사람들과 소음들의 버거움이 엄청났고, 물러가기 싫은 여름의 마지막 심술인지 엄청나게 지글거렸던 최근 며칠의 더위 때문에 자기 소개와 실라버스를 뒤적거리고 끝나는 가벼운 수업들만 있었는데도 금방 지쳐버렸다. 운동을 잘못해서 아킬레스건이 쑤시는 왼다리를  질질 끌며 집에 걸어가는 길, 동네 고등학교 앞 잔디밭에서 축구 경기가 열리고 있다. 학교 대항전 같은데 좀처럼 할 것 없고 볼 것 없는 이 동네 사람들에게는 이것도 큰 이벤트인지, 선수들의 학부모와 친구들보다는 훨씬 더 많아보이는 사람들이 경기장을 둘러싼 트랙에 철푸덕 앉아서, 아니면 타월을 깔거나, 각자가 갖고온 캠핑 의자, 알루미늄 간이 스탠드에 앉아서 버건디 저지를 입은 선수들에게 “Go Amherst!”를 외치며 응원을 하고 있다. 얼마만에 직관하는 축구 경기인가. 나도 슬그머니 스탠드의 빈 끝에 자리를 잡는다. 반대편 전광판을 보니 홈 팀이 1:0으로 끌려가고 있고 전반이 15분쯤 남았다. 이 15분 동안 나는 내가 앉아있는 사이드에서 가까운, 홈팀의 오른쪽 풀백을 맡고 있는 17번 선수의 이름이 브라이언이라는 것(Way to go, Brian!), 홈팀의 이름은 허리케인이며(Let’s go Hurricane!), 캐칭이 불안한 허리케인의 골리는 로비(Focus, Robbie!), 원정 팀의 득점은 전반 이른 시간 세트피스 플레이로 이루어졌다는 것을(It was very early into the game and they started at the left corner…) 차례로 배운다. 이 동네 2년차 거주민으로서 옆에 앉은 사람들과 함께 홈팀의 플레이마다 박수를 보냈지만 원정팀이 조금 더 우세해 보이긴 한다. 개인기가 좋은 선수들은 홈팀이 분명히 많은데 원정팀의 피지컬이 전반적으로 더 다부지고 무엇보다도 제일 눈에 띄는 건 키퍼 차이. 원정 팀 키퍼는 커버 범위가 거의 노이어급이고, 펀트 킥이 날아가는 궤적도 제법 날카롭다. 자기네들끼리 스페어 볼을 갖고 노느라 아웃된 공을 잽싸게 주우러 가지 않는 볼보이들의 피부색은 피프티 셰이드 오브 브라운 앤 블랙이고, 관중들이 있는 트랙 군데군데에 송아지만한 개들이 털이 수북한 목덜미를 긁어주는 주인의 손길을 만끽하며 느긋하게 누워있다. 점수 변화 없이 전반이 끝난다. 하프 타임이 되자, 남의 집 문을 두드려서 사탕을 얻어내고 길가에 레모네이드 스탠드를 차려 용돈을 버는 게 이 나라 사람들의 보편적인 유년기 통과의례임이 다시금 확인된다. 변화하는 몸에 한창 적응중인 십대들 특유의 구부정한 자세를 하고 긴 머리카락을 무심하게 땋아내린 주근깨 소녀들이 작은 과자봉지 꾸러미를 들고 1달러라고 외치며 돌아다니는데, 애들만 그러는게 아니라 볼캡을 쓴 덩치좋은 아저씨까지 얼음이 가득한 아이스박스를 가뿐하게 옆구리에 끼고 망고와 딸기, 코코넛 맛의 하드를 2달러에 판다. (아저씨, 벤모는 안되죠?) 어느새 해가 넘어가고, 조명탑에 불이 들어오고, 후반전이 시작한다. 휴식을 하고 나온 덕인지 아니면 라커룸 아닌 라커룸 토크가 매서웠는지 경기 템포가 빨라졌다. 홈팀이 열심히 몰아치다가 차단당한 공을 우당탕탕 원정팀이 전진시킨다. 전반부터 불안했던 로비가 결국 실책성 플레이를 범한다. 내 옆에서 모든 패스와 모든 킥과 모든 스로인마다 파이팅을 불어넣던 백인 할아버지는 홈팀의 골망이 흔들린 줄 모르고 “Good defense”라고 환호하다가 이내 시무룩해졌다. 이제는 2:0. 그러나 버건디 소년들이 영패는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뿜어내기 시작하고 이에 홈팀 팬들도 더 가열찬 응원을 보탠다. 결국 돌파하던 홈팀의 공격수가 상대 골문 앞에서 케이티엑스를 타고 가면서봐도 명백한 파울을 얻으며 드라마틱하고 아티스틱하게 쓰러진다. 레프리가 휘슬을 불며 골대를 향해 손을 쭉 뻗는다. 이번에도 옆자리 할아버지는 페널티킥이라는 걸 뒤늦게 알아차린다. 두근두근, 나를 포함해 스탠드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일어나고, 멀리서 보던 아이들도 갑자기 두손을 모은 채 필드 가까이로 모여든다. 골! 키커가 성공하자 모두가 즐겁다. “You got this!” “One more!” 할 수 있다는 말들이 여기저기에서 다시 쏟아진다. 경기장의 데시벨이 올라가자 얌전했던 견공들 중 한 녀석이 갑자기 멍멍, 하고 내질렀고 여기에 그의 친구들이 화답하면서 소리는 더욱 다채로워진다. 분위기를 넘겨주지 않으려는 원정팀이 다시 밀고 올라가고, 믿음직스럽지 못한 우리의 수문장 로비가 또 공을 제대로 처리못했지만 주장 완장을 찬 4번이 골라인 바로 앞에서 간신히 공을 걷어내고 쓰러진다. 동료들이 달려가 등을 두드리고 일으킨다. 이후 리드하고 있는 팀이나 따라가려는 팀 양쪽에서 쥐가 나서 몇 번 드러눕더니 경기가 끝난다. 홈팀의 2:1 패배로 마무리. 졌잘싸의 격려를 주고 받으며 사람들이 빠르게 흩어진다. 발목과 어깨가 갑자기 가렵다. 눈으로 공을 쫓고 박수를 보내던 동안의 희미한 소속감에 별안간 낯설음과 외로움이 스민다. 이 정겹고 즐거운 풍경을 담아보겠다고 랩탑의 메모장을 켜서 부지런히 여기까지 썼으나, 내 주변의 아무도 화면에 계속 생성되고 있는 이 긴 글자들의 행렬을 해독할 수 없다. 물론 그걸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신나게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기도 하지만. 눈인사를 하고 옆에 나란히 앉아 함께 기뻐하고 탄식하면서도 스몰토크를 나누지 않은 채 남들이 알지 못하는 네모둥그런 덩어리들을 타닥타닥 빚어내는 행위에는 분명 고독한 쾌감이 있다. 이렇게 내 안에 새겨지는 감정을 이방인의 감각이라고 해도 될까? 이만하면 2년차의 첫 주를 마무리하기에 제법 그럴듯한 감상같다. 가방을 둘러매고 다시 집으로 간다. 내일부터 기온이 다시 조금씩 내려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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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나의 화두는 quality sleep이다. 빛과 소음과 습도와 온도가 통제된 공간에서의 수면이 너무 간절하다. 에어컨이 없으니 꼼짝없이 창문과 블라인드를 열어놓고 자야하는데, 아침 네 시가 좀 안되면 건물 3층 코너에 위치한 침실을 에워싸고 있는 무성한 나무에서 새들의 힘찬 모닝 컨퍼런스가 시작되고, 방 안 세 곳의 창문 중 머리맡 창문은 하필이면 또 동향이어서 다섯 시면 이미 방이 환하다. 물에 빠지거나 샤워를 하는 축축한 꿈을 꾸다가 땀에 젖은 채 잠이 깨고, 타이머가 없는 멍텅구리 선풍기를 켜놓고 다시 잠을 청하면 두어 시간 뒤에 온몸이 뻣뻣해진 채로 기상한다. 

 

*여기까지 쓰고 나서 학생회 인수인계를 받기 위해 학교에서 어떤 친구를 만났다. 안부를 묻는 그에게 수면에 대한 불평을 털어놓았더니 센트럴 AC가 되는 집으로 이사하면서 안 쓰게 된 윈도우 유닛을 선뜻 주겠다고 한다. 역시... 선한 청년이었어. 저녁 때 집으로 가져다 주고 심지어 설치하는데 필요한 각종 소모품까지 사서 오겠다고. 7시 반이 조금 넘어서 왔는데 저녁을 안 먹었다길래 집 앞에 식당에서 간단히 식사를 먼저 하기로. 먹다보니 호구조사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고, 그가 외동이며 엔지니어링 백그라운드가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혹시 랜덤한 레고 조각들이 들어있는 상자만 건네주면 하루 종일 혼자서도 잘 노는 그런 어린 시절을 보냈나요, 라고 물어보니 오 어떻게 아셨어요. 당신도 레고맨이었군요. 예전에 만났던 사람이 딱 그랬답니다. 이런 얘기를 나누며 배를 채우고 다시 집으로 컴백.

 

*박스를 뜯고 나온 에어컨은 크기는 작았지만 침실을 쿨링하기에는 충분한 사이즈. 특유의 덜덜거리는 소음마저도 반가웠다. 에어컨을 고정하고 방충망을 빼낸 창문의 틈새를 메우는데, 나는 당연히 테이프로 막아야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던 구석의 미세한 틈들을 레고맨은 남은 스펀지를 이용해 메우겠다고 했다. 그러면 저 좁은 틈에 밀어넣으려면 젓가락을 가져다 줘야 하나? 라는 의문을 머리에서 굴리고 있는데, 레고맨은 전동 드라이버의 드릴을 송곳처럼 썼다. 물건의 다면적인 용도를 발견하고 매끈한 피니시를 추구하는 레고맨들. 똥손인 나에게 없는 능력과 비전. 레고맨들은 곁에 두면 참 이로운 존재들이다. 피니시를 적극적으로 칭찬하고 감사의 음료와 후식을 대접하고 다음에 집에 초대하겠다는 인사를 나눈 뒤 에어컨을 돌린 채 씻고 몸의 물기를 대충 닦고 그 앞에 재채기가 나올때까지 서있었다. 

 

*충분히 침실을 쿨링했다고 생각하고 에어컨을 끄고 기분좋게 잠이 들었건만, 새벽에 목덜미에 머리카락이 축축하게 달라붙은 채 또 깨버렸다. 에어컨을 보조할 수 있는, 타이머가 달린 성능 좋은 서큘레이터까지는 사야겠구나. 험난한 여름나기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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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지 이제 며칠 째더라... 수업과 티칭, 녹초되기와 충전하기, 조바심 내기와 될대로 되라하기의 진자운동을 반복하던 주 단위의 톱니바퀴에서 쏙 빠져나온지도 이제 거의 한 달이다. 이러니 날짜 감각이 완전히 녹이슬어버렸지. 조금은 강박적으로라도 흘러가는 시간을 예리하게 의식할 필요가 있다. 14일 수요일에 돌아왔고, 이틀 정도를 H와 같이 보냈는데 아... 좀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 여행의 막판, 체력인지 마음의 력인지 아니면 둘다인지 하여간 에너지가 바닥이 나버렸고 곧 앓아누울 거라는 예감이 온 몸으로 감지되었다. 결국 보리차와 감기약을 몸에 털어넣기 시작. 사나흘 간 하루에 열여섯시간씩은 잔 것 같다. 혼자 지내지 못했던 삼주 반 정도의 시간동안 통잠을 잔 적이 거의 없었으니, 그냥 그때의 수면 부족을 이렇게 메꾼다고 생각해야지. 

 

*정확하게 뭘 하면서 먹고 살게 될지는 아직도 모르겠고, 포트폴리오니 커리어니 그런 professionalization의 말들과 친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아는 사람들의 이름이 이제 어딘가에든 지면을 얻고 발언권과 권위를 갖는 사람으로서 가시화되는 것을 보고 있으면 조바심이 든다. 그런데 사실 안다. 그렇게 어느 순간 "이름을 알리는"데 까지에는, 그러니까 남들보다 키가 커져서 눈에 띄고 선택받는 존재가 되기 까지에는 짧지 않은 시간의 노력과 성취물들로 이루어진 발디딤대를 만드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여기까지 써놓고 오랜만에 들어가본 페이스북에 잠깐 스쳐지나갔던 친구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분야에서 책을 냈고, 명석한만큼 자신의 유니크함을 고래고래 온 주변에 알려야 직성이 풀리는 좀 오래된 동창 한명이 아이를 출산했다는(산전 우울증과 산후 우울증에 대한 엄청난 넋두리를 곁들인)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책도 아이도 생산하지 않은(혹은 못한?) 나로서는 어느 쪽이든 신산하고 떫고 그렇다. 그래서 여기에라도 뭔가를 적어놓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하게 되었다는 것이 몇 년간 잠자던 블로그에 낑낑 재접속을 한 경위가 되겠다.

 

*미국으로 오게 되면서, 여기로 올 때 야심차게 들고온 새 노트에 며칠에 한번, 몇 주에 한번씩 만년필로 뭔가를 끄적거리기는 하지만,  열심히 살자는 내용도, 그것을 담는 언어에도 조금의 발전이 없다. 괴발개발 같은 글씨에 이거했다 저거했다 그러니 반성하자는 내러티브의 반복. 초등학생의 일기도 이것보다 낫겠다. 아니 초등학생 왜 무시해? 그리고 그들은 그림도 그리고 날씨도 적어넣으니 내 일기같은 끄적임들보다 정보값이 더 풍부하다. 정말로 매체가 나의 생각을 지배하는 걸까? 키보드로 타닥거릴 때 조금더 많은 말들과 생각에 나온다. J를 비롯한 꽤 많은 주변인들이 테라피의 일환으로 블로그 일기쓰기를 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걸까. 이미 글같은 것을 생산하는 행위는 손에 펜을 쥐고 종이와 접촉하는 일이 아니라 손가락을 움직이고 커서로 요리조리 자리배치와 편집을 하는 일이 되어버린 것일까. 어찌됐든 이제부터는 여기에다가도 뭔가 기록을 남겨야지. 이게 디딤대가 바로 되어주지는 않을테지만, 디딤대를 만드는 습관과는 어떻게든 연결이 될터이다. 

 

*에어컨이 빵빵한 사이언스 빌딩 로비에서 작업을 하다가 화장실에 갔는데 변기에 앉고보니 추워서 시퍼러진 배와 허벅지 주변으로 팬티와 청바지 자국이 너무 강렬하게 나있는 것을 보았다. 누가 책을 내고 애를 낳고 그게 뭐시 중한디? 아니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은(못한) 내 몸도 이렇게 늙고 낡아가고 있다. 색과 탄력을 잃어가는데에 대한 절망과 무력감이 젠더 인클루시브 화장실 변기 위에 앉아있는 나를 습격했다. 볼일을 보고 다시 자리에 앉았는데 유리창 너머 청설모가 신기한 자세로 바닥에 엎드려있는 것을 보았다. 얘는 밖이 너무 더워서 저러는 건가? 이내 포로로하고 날듯이 사라진 그 친구의 활력과 민첩함이 새삼 사무쳤고, 죽은 사람의 그것처럼 차갑고 탄력없는 몸에 피를 돌게 하겠다고 감기가 다 나으면 가겠다고 미뤄두었던 운동을 가겠노라 결심했다. 거의 한 달만에 간 운동은 너무너무너무너무 힘들었다. 막판에는 거의 기다시피. 바닥에 하도 무릎을 털썩 털썩 떨어뜨려서 레깅스에 곧 구멍이 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쨌든 땀을 쏟고 온몸 구석구석에 피를 보내고, 레깅스 자국이 남았지만 이건 괜찮은 자국. 이 정도면 오늘 하루 나쁘지 않았다.

 

 

 

GSI 장학금을 두고 해보는 몇 가지의 셈

(현행 장학제도의 지급액과 장학 자격의 제한 요건에 대한 단상)

 

 

필자와 같은 파워문과 인문대 대학원생이 계산기를 두드리는 순간은 대체로 보잘것 없는 소득과 지출을 저울질 하고, 그 비교의 결과값이 양수든 음수든 어쨌든 감당할 수 있을만큼의 숫자로 수렴되도록 최선의 방안을 궁리하고 점쳐보는 경우이다. 가장 최근에 했던 셈은 도서 매입 전략과 관계된 것으로, 거창하게 말했지만 사실 이는 인터넷 서점의 할인 쿠폰을 어떻게 먹일 것인지에 대한 계산이었다. 곧 시작될 새 학기의 수업에서 읽을 도서의 구입 총액이 20만원쯤 되는 상황에서, 장바구니를 한 번에 결제하는 것은 만용에 가깝다. "N만원 이상 구매시 N천원 할인"이라는 이름으로 발급된 여러 장의 쿠폰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는, 사야될 책들의 금액을 각각 적어보고, 어떻게 조합해야 할지 신중히 고민한 뒤, 분산 결제를 할 필요가 있다.

 

장학금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궁핍한 대학원생에게 이같은 셈이 필요한 순간은 자주 찾아오고, 이 셈의 뒷맛은 대체로 씁쓸하다. 입이 써질 것을 알면서도 또다른 덧뺄셈을 해볼까. GSI 장학금을 받는 학생은 최소 6학점 이상 수강, 학과사무실에서 배정하는 주당 N시간의 근로, 그리고 담당 교수가 요구하는 불/규칙적 업무 수행의 의무를 가진다. 그렇다면 학생 입장에서 이같은 의무를 이행하는데 드는 최소 비용은 얼마일까? 여기 학교에서 적당한 거리가 있는 서울 시내에 거주하면서 석사과정 중인 대학원생이 있다고 치자. 이 학생은 등록금을 면제받고 월 20만원을 지급받는다. 학교에 오는 날, 이 학생은 1250원의 지하철 기본 요금에 거리와 환승 추가 등을 감안하면 왕복 차비로 최소 3000원 이상을 지출한다. 근무든 수업이든 학교에 오면 최소 반나절은 머무르기 때문에 3000천원에서 5000원 사이의 학식을 1회 혹은 2회 정도 먹게 되며, 이에 하루의 식비를 4000원, 1.5회로 계산하여 6000원이라고 하자. 수업을 듣는다면 아무래도 읽어야할 자료나 제출할 과제물 등의 인쇄비가 발생할터. 20페이지짜리 학술논문 한 편을 장당 50원에 인쇄하면 1000원이 든다. 택시를 탄 것도 아니고, 비싼 밥을 먹은 것도 아니고, 읽어야하는 수백 장의 자료 중의 극히 일부를 인쇄했을 뿐인데, 이 학생은 벌써 만원을 지출했다. 6학점 이상 수업을 듣고 그 외 각종 근무를 수행하려면 일주일 중 이런 하루는 최소 3회가 되며, 이를 4주로 계산하면 12만원이 된다. 20만원을 수령할 수 있는 조건을 정말 최소한으로 충족시키는데에만 12만원이 들고,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학교에 나와서 공부를 한다면 20만원을 고스란히 다 쓰게 되는 셈이다. 

 

이 말도 안되는 계산을 하다보니 입이 쓴 게 아니라 눈이 촉촉해진다. 이 계산에 얼마나 다양하고 예측불가능한 삶의 비용들, 주거비, 통신비, 의료비, 기타 교육/의복/문화생활비 등등이 제거되어 있는지는 구태여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요컨대 핵심은 장학생으로서의 요건을 충족/유지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이 지급되는 장학금을 거의 소진하다시피하는 현행 수준에서 “장학금의 혜택”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활비는 커녕, 학업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사는데 자연스레 수반되는 지출들, 예컨대 수업이나 근무가 없는 날에도 연구실에 나오고, 필수 도서가 아닌 책을 추가로 사서 읽거나 외부 강연을 수강하고, 학우들과 차 한 잔을 마시기에도 턱없이 부족해서 자꾸 셈을 해야하는 금액을 지급하면서 “학업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는 학교의 주장은 학생들에게 설득력이 없다. 상황이 이런데도 어떤 교수님은 "요새 학생들은 하고 싶은게 많아서 장학금 받으면서도 과외하느라 바쁘다”와 같은 발언을 하며, 이 말에 생활비를 벌기 위해 당장 저녁에 일을 하러가야 하는 대학원생의 마음은 조용히 가라앉는다. 

 

학업에 전념하기는 커녕 학업을 유지하기에도 충분하지 않은 금액을 지급하면서 학교는 학생의 연소득이 1200만원을 초과해서는 안된다는 조건을 추가로 내세운다. 이 1200만원이라는 금액은 또다른 셈을 하게 만든다. 우선 이 금액은 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어떻게 결정된 것인가? <강의.연구지원장학금 관리지침>에 따르면, “근로소득 연 1200만원 이상 소득자”에 대한 자격 제한 내용은 공식적으로 2019년 1월 29일 자 개정을 통해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 기준이 그 당시 어떤 기준에 의해 산정된 금액이라면 (가령, 2019년도의 법정 최저임금 N원*월 N시간의 근로 기준) 이 조건은 어째서 2020년에 새롭게 조정되지 않았는가. 조정하지 않았다면 그 결정의 근거는 무엇이며, 학교는 앞으로 언제까지 이 조건을 유지할 것인가. (2025년에도 소득 제한은 여전히 연간 1200만원일까?) “연간 1200만원”의 근거가 무엇인지, 그것이 합당한 것인지, 아니면 그것이 애초에 있었던 것인지 묻고 싶다. 나아가, 연 1200만원(월 100만원)이라는 금액이 과연 장학금의 신청자격을 자동적으로 제한할만큼의 소득 수준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든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0년 1인가구 기준 중위소득(예전의 최저 생계비)조차 월 105만원이 약간 넘는다. 그렇다면 “상식적이고 합리적으로” 셈해볼 때, 소득 제한선은 아무리해도 최소 1870만원(105만원*12개월 + 등록금 310만원*2학기) 이상은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즉, 연간 1200만원이라는 현재의 소득 제한 기준은 최소한의 생활비와 대학원 교육과정에 요구되는 비용의 규모에 턱없이 모자라며, 따라서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수준으로 상향조정되는 것이 마땅하다. 마지막으로, 현재의 <지침>은 “학문후속세대의 소양과 인격을 갖추었다고 인정되는 대학원생”으로 장학 자격을 정의하면서, 그 세부 요건으로 “근로소득 연 1200만원 이상 소득자는 제외”한다고 명시한다. 이말인즉슨, 소득 수준이 연 1200만원 이하인 학생들만이 “학문후속세대의 소양과 인격을 갖추었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 최저 생계비에도 미달하는 소득 규모가 학교 측이 “인정”할 수 있는 “학문후속세대의 소양과 인격”인가. 이 출처불분명하고 비현실적인 금액에 소위 "인정가능한" 대학원생의 소득 수준에 대한 학교의 어떤 시각이나 판단이 함의되어 있지는 않은가. 이같은 학교의 시선에서 연 1190만원을 버는 대학원생과 1210만원을 버는 대학원생 간에는 과연 차이가 있을까 없을까. 한 가지 확실한 건 있다. 전자와 달리 후자는 장학금을 신청할 수 없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대학원생과 관련한 유명한 짤이 하나 생각났다. 아마 거의 모든 대학원생이 한번은 접해보았을,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의 한 시퀀스의 캡처이다("심슨 대학원생 짤"로 검색하면 나온다). 바트 심슨이 잘라낸 꽁지머리를 뒤통수에 갖다대면서 자신이 대학원생이고 작년에 600달러를 벌었다고 말하자, 마지 심슨은 "얘야, 대학원생 놀리지마라. 그들은 단지 잘못된 선택을 한것 뿐이야"라고 타이른다. "꽁지머리"와 "연소득 600달러"로 대학원생을 정의하는 아들과, 대학원에 간 것이 잘못된 선택임을 아주 당연하게 상정하고 있는 엄마의 대화가 자아내는 쓴 웃음. 이제까지는 웃고 넘겼던 짤인데, 몇 번의 셈을 하고 난 지금은 "꽁지머리"와 "연소득 600달러"가 새삼스럽다. 생활비라고 받는 장학금이 부족해서 미용실도 못가고 결국 꽁지머리를 하게 된, 그런데도 인간답게 살 수 있을 만큼의 소득활동을 제한받는 그런 처지의 대학원생을 상상하게 되면서 괜시리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싱숭생숭함은 분명 장학금을 받는데도 여전히 생활비 걱정에 아르바이트를 놓을 수 없는, 그러나 "소양과 인격"을 잃을만큼 많이 벌어서도 안되는 기묘한 처지에 놓인 대학원생만이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일 것이다. 

 

 

 

*J가 장학처랑 협상할 때 필요하다고 부탁해서 썼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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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영원히 타인일 타인 때문에 내 생활과 내 감정이 휩쓸리고 침범 당하는게 너무 지친다. 

나라는 인간의 중심이 아직도 단단히 여물지 못했음을 또 한 번 절감하면서, 나를 다지는데 집중하겠다고, 함부로 집어삼켜지지 않겠다고, 오직 나만을 위해 성실하겠다고 하루에 열 번씩 다짐하는 요 며칠이다. 

 

Who says I can't get f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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