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급격히 나빠진건지,

뭔가 하나를 기억해 내는데 걸리는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 ㅜㅜ


내가 좋아하는 것들, 자주 찾고 싶은 것들을 잘 정리해두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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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 <계절감>


귀퉁이가 좋았다
기대고 있으면
기다리는 자가 되어 있었다

바람이 불어왔다가 물러갔다
뭔가가 사라진 것 같아
주머니를 더듬었다

개가 한 마리 다가오고 있었다
처음 보는 개
개도 나를 처음 봤을 것이다

내가 개를 스쳤다
개가 나를 훑었다

낯이 익고 있다
냄새가 익고 있다

가을은 정작 설익었는데
가슴에 영근 것이 있어
나도 모르게 뒤돌아보았다

땀을 흘리는데도
개는 가죽을 벗지 않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

땀을 흘리는데도
나는 외투를 벗지 않고 있었다
어찌하지 않은 일

우리는 아직 껍질 안에 있다

뭔가 잡히는 것이 있어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꼬깃꼬깃 접힌 영수증을 펴보니
다행히 여름이었다

미련이 많은 사람은

어떤 계절을 남보다 조금 더 오래 산다 



------------



개는 어쩔 수 없이 가죽을 벗지 못하고 나는 어찌하지 않으려 외투를 벗지 않는다.


모퉁이에 기댐으로써 기다림을 가리고 주머니 속 영수증의 날짜가 그닥 오래되지 않았음에 안도하는 뒷맛이 쓴 위안, 금새 숙성된 미련. 


껍질을, 허물을 벗는 변태의 순간은 얼마나 요원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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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chée dans la forêt T'avais six ans je crois Debout sur ton rocher J'ai de la peine pour toi Vas, tu devrais rentrer Il commence à faire noir La nuit est tombée Je te dis au revoir Maintenant, j'en suis certaine Tu ne reviendras Pas j'en suis certaine Gamine aux abois J'ai retrouvé tes carnets Les cassettes que tu gardais Je sais même plus qui t'étais Ta couleur préférée J'suis perdue dans la forêt De tes grandes espérances Je te vois t'éloigner Adieu l'enfance Adieu l'enfance Maintenant j'en suis certaine Tu ne reviendras pas J'en suis certaine Gamine aux abois J'pleurerai pas pour ça J'pleurerai pas pour toi



심보선, <새>


우리는 사랑을 나눈다.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아주 밝거나 아주 어두운 대기에 둘러싸인 채.


우리가 사랑을 나눌 때,

달빛을 받아 은회색으로 반짝이는 네 귀에 대고 나는 속삭인다.

너는 지금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너는 지금 무슨 생각에 빠져 있는가.


사랑해. 나는 너에게 연달아 세 번 고백할 수도 있다.

깔깔깔. 그때 웃음소리들은 낙석처럼 너의 표정으로부터 굴러떨어질 수도 있다.


방금 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 미풍 한 줄기.

잠시 후 그것은 네 얼굴을 전혀 다른 손길로 쓰다듬을 수도 있다.


우리는 만났다. 우리는 여러 번 만났다.

우리는 그보다 더 여러 번 사랑을 나눴다.

지극히 평범한 감정과 초라한 욕망으로 이루어진 사랑을.


나는 안다. 우리가 새를 키웠다면,

우리는 그 새를 아주 우울한 기분으로

오늘 저녁의 창밖으로 날려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함께 웃었을 것이다.

깔깔깔. 그런 이상한 상상을 하면서 우리는 사랑을 나눈다.


우리는 사랑을 나눌 때 서로의 영혼을 동그란 돌처럼 가지고 논다.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정작 자기 자신의 영혼에는 그토록 진저리치면서.


사랑이 끝나면, 끝나면 너의 손은 흠뻑 젖을 것이다.

방금 태어나 한 줌의 영혼도 깃들지 않은 아기의 살결처럼.

나는 너의 손을 움켜잡는다. 나는 느낀다.

너의 손이 내 손안에서 조금씩 야위어가는 것을.

마치 우리가 한 번도 키우지 않았던 그 자그마한 새처럼.


너는 날아갈 것이다.

날아가지 마.

너는 날아갈 것이다.




-------------


깔깔깔, 하고 휘발된 웃음소리. 날아가버린 새. 부재로서 존재하는 기억들.








2ne1 해체라니... 밀레니엄 이후의 케이팝 인더스트리에 가장 신선하고 중요한 발자국을 남긴 그룹이라고 생각했는데.. 


작년엔가 공민지가 yg 나갈 때 이 그룹은 더 이상 예전같을 수 없겠구나 했었지만, 

(얘네 후기 앨범으로 갈 수록 노래 전반을 받치는건 실상은 민지였다고 생각. 쩌는 리듬감, 안정적이고 부드러운 톤, 힘있는 발성까지... 공민지 없이는 얘네 네 명의 밸런스가 붕괴함.)


사실상 활동은 안하고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해체 한다니 너무 아쉽다. 


덕분에 또 개미지옥 유튜브에서 열심히 영상 찾아보고 있네 ^^


정성하랑 콜라보한 영상은 진짜 영구보존해야 함. 앞으로 한 10년간은 멤버들 각자가 갖는 음색, 창법, 발음, 이런 개성들의 조합이 이렇게 안정적이면서도 또 유니크한 퀄리티로 나오는 걸그룹은 없을듯.


흠도 많았고 얼굴도 쳐다보기 힘들정도로 변했지만... 그래도 그 목소리가 너무 아까운 박봄. 어디서든 즐겁게 계속 노래 했으면 좋겠다. 

 

엉엉, 공부하기 싫어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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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니,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매일 매일 슬픈 것을 본다. 매일 매일 얼굴을 씻는다. 모르는 사이 피어나는 꽃. 나는 꽃을 모르고 꽃도 나를 모르겠지. 우리는 우리만의 입술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우리만의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 모르는 사이 지는 꽃. 꽃들은 자꾸만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그 거리에서 너는 희미하게 서 있었다. 감정이 있는 무언가가 될 때까지. 굳건함이란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인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오래오래 믿는다는 뜻인가. 꽃이 있던 자리에는 무성한 녹색의 잎. 잊는다는 것은 잃는다는 것인가. 잃는다는 것은 원래 자리로 되돌려준다는 것인가. 흙으로 돌아가듯 잿빛에 기대어 섰을 때 사물은 제 목소리를 내듯 흑백을 뒤집어썼다. 내가 죽으면 사물도 죽는다. 내가 끝나면 사물도 끝난다. 다시 멀어지는 것은 꽃인가 나인가. 다시 다가오는 것은 나인가 바람인가. 사람을 믿지 못하는 것은 자신을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거짓말하는 사람은 꽃을 숨기고 있는 사람이다. 이제 우리는 영영 아프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영영 슬프게 되었다.




----------------


영영 슬플 것 같은, 생채기 난 마음을 이렇게 때때로 들여다보면 언젠가는 괜찮아질까. 

가만히 방에 있어도 코가 시려운 이 계절의 유일한 장점은 눈물 대신 흐르는 콧물을 훌쩍거리는게 어색하지 않은 날들이라는 점.


떨어진 꽃들이 땅에 묻혀 거름이 되고 그 자리에서 다시 싹이 틀 걸 분명히 알면서도 지금으로선 그 때가 너무 요원하다. 영영 아플 것 같은 이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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