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언니의 급 카톡을 받고 오랜만에 학교 사람들 몇몇이 모이는 자리에 끼게 되었다. 가기 전에는 너무 우울했지만, 막상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니 역시 이런저런 다양한 수다를 나누며 기분이 좀 풀렸다. 그 중에 재밌었던 이야기 토막 하나를 남기자면. 



한 친구가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시민들 대상으로 교육워크샵 같은걸 진행하면서, 다시 태어나는 일에 대해 상상해보세요, 라는 질문을 던지면 50대 이상은 이루지 못한 꿈이나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해 이런저런 대답을 내놓는데, 오히려 10대, 20대는 다시 안 태어나고 싶다고 하더란다, 하는 주제를 꺼내놓았다. 우리는 역시 헬조센이군! 하며 젊은이들의 답변에 공감하고, 각자 다시 태어나면 뭐가 되고 싶은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K 언니는 "그냥 고요한 바닷속 미역?"이라고 했고, 다른 언니들도 바위나 나무 같은 자연물, 아니면 부잣집 고양이 같은 소망을 고백했다. 나는 뭐가 좋을까... 라고 생각하는데 콸콸 흐르는 용암의 이미지가 갑자기 머리에 스쳐지나갔다. 와 너무 멋지다. 내가 한번 뿜으면 니들 다 죽거나 다쳐. 자주 울컥하고 자주 화나고 자주 들뜨는, 요즘의 나와 너무 딱 맞는데...  "나는 활화산 할래요, 아님 활성 단층 같은거. 다시 태어나는 거 생각만해도 괴롭지만, 그래도 태어나야한다면 대빵 힘 센걸로 태어나고 싶네." 다들 웃으면서 "요새 많이 힘들었구나"와 같은 말들을 건네주었지만, K 언니는 미역 같은 하찮은 미물을 떠올린 자신의 스케일에 반성한다며 나의 답을 높게 사주었다. 우리는 카톡 프로필 메시지를 샌 안드레아스로 바꾸자면서 한참을 깔깔거렸다. 



집에 오는 길에, 앞으로 K 언니랑 자주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라스 폰 트리에의 <멜랑콜리아>를 떠올렸다. 멜랑콜리아의 운석으로 태어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거역할 수 없는, 거대한 중력의 궤도를 타고 지구를 향해 힘차게 돌진하는 미지의 운석. 다양성 영화라는 불분명한 이름을 달고 독립영화 시장을 잡아먹으면서 재개봉되는 영화들 솔직히 반기지 않지만, <멜랑콜리아>만큼은 극장에서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하지만 안되겠지. 그 영화는 수지타산 안맞을거야... 라스 폰 트리에 특별전 같은거 열렸으면 좋겠다. 극장에서 그의 영화 전부 다 보고 우울의 독에 빠져버리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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