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난간에서>
누가 슬픔의 별 아래 태어났으며
누가 슬픔의 별 아래 묻혔는가
이 바람 휘황한 고지에서 보면
태어남도 묻힘도 이미 슬픔은 아니다
이 허약한 난간에 기대어
이 허약한 삶의 규율들에 기대어
내가 뛰어내리지 않을 수 있는
혹은 내가 뛰어내려야만 하는
이 삶의 높이란
--------
삶도 죽음도 더 이상 슬프지 않을 때가 되어서 시인은 고지에 오른다.
하지만 그 높은 곳에서, 비록 허약할지라도, 난간과 삶의 규율은 화자를 붙들고 있고.
뛰어내릴 높이를 가늠하는 자는 결코 발을 떼지 못하리라.
때로는 읽기가 힘들만큼 격렬한 자해가 남긴 흉터 같은 시인의 시가 여전히 읽히고 사랑받는 이유는 결국 상처가 아문 자국으로서의 흉터 그 자체가 삶을 증거하기 때문이겠지. 가난하고 외롭고 불운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꺼지지 않은 그녀의 신화 같은 삶, 그 삶의 불꽃이 피워낸 시.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전 손택 - 다시 태어나다 (0) | 2017.01.24 |
---|---|
비스와바 쉼보르스까 - 쓰는 즐거움 (0) | 2017.01.19 |
오은 - 계절감 (2) | 2016.12.11 |
심보선 - 새 (0) | 2016.12.11 |
이제니 -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0) | 2016.1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