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처럼 울적한 생각이 이리저리 치닫는 밤, 미국에 있을 때 엄마와 주고받던 메일들을 읽고 싶어져서 (조금이나마 힘이 될까 싶어) 안 쓰던 핫메일 계정에 어찌어찌 해서 간신히 접속하였는데 (한 5년만인가...) 메일이 몽땅 사라져있다! 찾아보니 MS가 각종 서비스들 통합하는 과정에서 오랫동안 접속 안 된 계정들은 청소를 했다고... 365일 동안 inactive일 경우 다 삭제하는게 terms of agreement에 있다는데, 읽을 수 없다니 더 간절하다. 


핫메일에 뭐가 들었지, 또 이렇게 사라진 기록들이 뭐가 있으려나 하고 생각하다가 싸이월드까지 접속 했다. 그리고 내가 찾고 싶었던 건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친구 R의 기억인가 싶어졌다. 싸이월드 아이디는 뭐였더라. 이것도 빌어먹을 핫메일 아이디였네. 여러번 시도 끝에 패스워드 찾는 것도 성공했지만, 여기도 다 사라져있네. 재작년인가 한창 백업 열풍 불 때 글은 안 사라진다고 해서 다이어리는 나중에 필요할 때 봐야지 하고 안심하고 있었는데, 다이어리 글도 하나도 안보이고... 여기도 검색해보니 싸이월드 측에서 서비스 재정비하면서 일촌평과 쪽지 등 마이너한 기록들은 다 삭제했다고 한다. (글은 고객센터에 신고하면 복구가 되나? 흠...) 그 친구와 주고받았던 마지막 쪽지가 갑자기 이렇게 애타게 될 지 그때는 몰랐었네. 사실 핫메일에도 그 친구가 보낸 메일이 서너 통쯤 있었다. 읽었지만 답장은 하지 않았던 메일들... 그 친구한테 답장한 내 마지막 쪽지가 어땠는지, 그 친구가 정확히 뭐라고 말했는지, 조각조각 깨져버린 기억들을 어떻게든 복구하고 싶지만, 다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린 것 같다. 그 아이가 너한테 하는 마지막 연락이야, 같은 말을 했었던가. 


너.

이렇게 별 것도 아닌 나를 언제나 대단하게 봐주었던 너.

내가 한 때 반짝거릴 수 있었다면 그건 너 덕분이었는데.

세상에 정붙일데가 하나도 없다고 느낄 때, 매일 밤 울 때, 먼 곳에서도 니가 변함없이 보여준 애정의 온기로 버텼던건데.

늦게나마 그걸 깨달았을 때 조차 나는 너한테 정말 고마웠다고, 진심과 정성을 담아 먼저 인사해주지 못했구나.

니가 나한테 전한 니 마지막 소식의 흔적조차 나는 무심하게 잊고 있었네. 


어찌 보면 그냥 0과 1의 조합일 뿐인데, 그 아무것도 아닌 무미건조한 두 숫자가 얽혀서 만들어낸 덩어리를 통해 우리는 소통을 하고 마음을 나눈다. 그리고 그 덩어리들은, 어딘가에 무한히 저장가능한 0과 1의 조합이라고 생각하니까, 사라지지 않을거라고 방심하고 대충 보관해두고 있다가, 뒤늦게 그걸 잃고 애달파한다. 


0과 1이 만들어낸 매끈하고 완전한 기록들은 사라졌으니, 울퉁불퉁하고 불완전한 내 머릿속 조각 기억이라도 잘 붙들고 있을 수 밖에. 살면서 그 친구와 언젠가 어디에선가 다시 마주치는 행운을 기대하면서, 그리고 그때는 잊지말고 지금의 그리움과 고마움을 먼저 진심으로 전해주자는 다짐을 간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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