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7일 일요일 오전 열한시 삼십분에 관람. 



첫 인상은 영영 볼 수 없게 된 자들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여자의 이야기, 이정도 였다.


일본영화 특유의 정서? 공기? 같은 부분은 숨막힐 정도로 답답할 때가 있다. 일본어 특유의 재잘대는 듯한 리듬으로 조곤조곤 말하면서 조신하게 무릎을 꿇고 앉아 두손으로 찻잔을 잡고 있는 여성이 화면에 등장할 때는 솔직히 짜증까지 난다. (여자들끼리 그러고 있을 때는 여자들끼린데 좀 편하게 앉아있으라고! 하는 생각이 들고, 남자와 그러고 있을 때는 남자는 편하게 양반다리 하고 있는데 너는 왜 무릎에 굳은살 박고 있냐! 싶고. 물론 이건 하루의 대체를 누워 보내는 나같은 인간이 갖는 이상한 심통일 것이다.) 십대나 이십대 초반까지는 그런 정갈하고 단정한 분위기가 꽤 근사해 보였는데 (일본 소설들을 열심히 읽던 때와 일치한다)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 꾹꾹 눌러대는 것이 좀 질리기 시작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가 나쁘지도 않지만, 딱히 그렇게 좋은 점도 잘 모르겠다 싶었던 것도 이런 정당하지는 않지만 떨칠 수 없는 이유 없는 반감이 작용했을 것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회사 선배가 영화도 보는게 어떻냐고 해서 별 기대 없이 보러 갔고, 사실 영화 중반에 너무 피곤해서 잠깐 눈을 감고 있기도 했다. 


교과서대로 잘 만들었다, 라는 느낌을 받았다. 특정한 구도, 사물, 음영으로 구성된 아름다운 이미지들이 수미상관 식으로 여러번 등장하는, 역시나 정갈하고 질서정연하게 깔려 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와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여주인공의 시점샷이 바다에 물질하러 나가는 이웃집 할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시점샷으로 연결될 때, 나는 그 할머니가 살아 돌아올 것을 알면서도 (상실과 "치유"에 대한 영화라고 홍보했으니까) 혹시나 반대의 경우가 되면 어쩌나 하고 염려했다. 여자에게 약속한대로 꽃게인지 문어인지를 정확하게 가져다준 할머니에게 불사신 어쩌구 하는 대목도 예상가는 대목이었지만 쉽게 감동하는 나인지라 이것 또한 예상대로 뭉클했다. 그런데 이 에피소드는 왜 들어있었을까. 생각해보니 이 할머니와의 에피소드가 있었기에 영화가 클라이맥스에 도달할 수 있었던 거 아니었을까. 무언가에 홀린듯 장례 행렬을 좇아, 검푸른 바다와 땅의 경계가 아슬아슬한 그 곳에 선 여자를 발견하게 되는 그 장면에 이르기 위해. 


어째서 누구는 영원히 부재하게 되고, 누구는 웃으며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되는가. 그리고 그 부재의 영역으로 걸어나간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은, 당연하지만, 영영 사라진 자 혹은 죽은 자에게 그 답을 들을 수 없기에 완벽한 미지로 남고 그렇기 때문에 남은 자의 삶을 무겁게 짓누른다. 마지막 뒷모습인지도 모르고 헤어진 할머니와 남편처럼 돌아오지 못할까 전전긍긍했던 옆집 할머니의 무사귀환이 있고 나서야 여자는 남편의 자살을 이해할 수 없어서 혼란스러웠던, 하지만 그걸 결코 입 밖으로 소리내어 말할 수 없었던 울음 섞인 질문을 터뜨려낸다. (도우시떼!)


치매에 걸려 사라진 할머니와 뒤에서 맹렬히 달려오는 기차 소리에도 선로를 벗어나지 않은 남편이 설령 여자에게 돌아오더라도 그들조차 자신들이 그렇게 사라져야만 했던 이유를 대답할 수 없다. 그래서 누구나 어떤 빛에 끌려버리고 마는 순간들이 있다는 남편의 대답은 일견 이 무겁고 괴로운 질문의 대답으로 한없이 불충분해보이지만, 역으로 삶의 불완전성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음을, 그럼으로써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의 어둠과 자기장에서 빠져나오는것이 결국은 중요한 일임을 드러낸다. 남편은 집에 가자고 한 뒤 몸을 돌려 원경의 프레임 바깥으로 나아간다. 그의 몸짓은 여자의 손을 잡아 끌기 위해, 하다못해 여자의 어깨를 다독여주는 불필요한 제스처를 취하지 않으며 여자가 자신의 발걸음을 움직일 수 있도록 그녀와의 거리를 그대로 유지한다. 클라이막스의 카메라가 인물의 얼굴을 잡는 대신 먼 곳에서 이 어둡고 아름다운 바다와 연기와 하늘을 조망하는 이유는 여자와 남자의 이 거리와 방향을 전달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영화의 마지막이 어땠더라. 여자의 아이에게 자전거를 가르쳐주는 남자와 그의 딸의 즐거운 모습이 등장하고, 남자의 아버지는 환한 빛으로 가득찬 이 풍경을 바라보며 좋은 계절이 왔다, 라고 했던 것 같다. 검은 옷 대신 처음으로 하얗고 푸른 옷을 입은 여자는 (예의 그 특유의) 정갈하고 단정한 분위기를 풍기며 시아버지 곁에 서 있고. 요즘처럼 빛이 폭력적일만큼 강렬한 계절이 아니었다면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이 이야기를 더 너그럽게 받아들였을 것 같다. 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올 무렵 찾아보면 더 좋을 것 같은 영화다. 



*역시 일본은 섬나라라 그런가. 그들의 해안선이 뿜어내는 고유의 아름다움과 에너지는 매혹적이다. <아가씨>에서도 그랬고. 그에 비해 한국 영화의 자연은 바다보다는 역시 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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