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4일 금요일. 영화보고 이리저리 신나게 메모했는데 실수로 삭제해버려서 대충 쓰는 후기.
- 컨택트. 조디 포스터가 나온 그 옛날 영화가 재개봉한 건 줄 알고 있었는데, 우연히 이 영화 스틸컷을 보고 확 꽂혔다. (조디 포스터의 그 영화는 "콘"택트라더라...) 아, 이건 극장에서 봐야하는 영화구나 하고. 저 드넓은 평원의 광활함을 압도하는 우주선의 존재감. 거기다가 그 모양은 또 어떻고. 스티브 잡스가 자기 방 한 가운데에다가 모셔두었을 것 같은 젠 스타일이다.
- 영화는 <트리 오브 라이프> 같기도 하고 <그래비티> 같기도 하다가 <괴물> 같기도 했는데, 결론적으로는 후반부에서 주인공 루이스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전반부의 무게감과 정교함에 비해 성기다는 점이 아쉬웠다. 하지만 영화의 소위 "반전"은 영화의 내러티브 규칙과 잘 결합되어 있어서 좋았다.
- 결과적으론 최근에 본 영화들 중에서는 여운이 오래 지속되고 있는 영화다. 음악/사운드와 영화의 전반적인 미감이 묘하게 결합되면서 관객의 집중력을 바짝 끌어올리는 방식을 좋아하는데. 특히나 처음으로 우주선(?)에 진입하던 그 순간, 영화 속 인물들은 중력이 약해지면서 두둥실 뜨는 것과 반대로 사운드는 중량감 있게 의자에 앉아있는 나를 짓누르던 그 때의 몰입감이 대단했다. 왠지 어깨가 아픈것 같고, 씩씩대는 숨소리조차 죽이게 되는, iptv 감상으로는 절대 느끼지 못하는 현장감. 지금도 OST를 듣고 있는데 발밑으로 찬 기운이 스멀스멀 기어오는 것 같고 막 그렇다.
- 한국 포스터... 구리다. 90년대 느낌이 물씬한 게 문제가 아니라(아 물론 그것도 문제인듯..) 영화 후반부의 멜로/드라마적 요소를 지나치게 강조한 디자인. <인터스텔라> 스멜... 거기다가 "어라이벌"이 그렇게 어려운 제목도 아닌데 "컨택트"로 왜 이름을 바꿨을까? 나처럼 조디 포스터 영화로 착각한 사람들을 노린건가? 아니면 외계인과의 "조우"가 중심이 되는, 이미 익숙한 플롯의 SF로 작품을 포지셔닝하기 위한 마케팅적 판단인가? 어쨌든 오른쪽 버전이 훨씬 더 간결하고, 영화의 동력이 되는 질문을 명쾌하게 내세운다는 점에서 더 좋다. "Why are they here?" 영화는 결국 "What is your purpose on earth?"라는 질문의 답을 얻어가는 과정에서 도출되는 세계관을 전달하기 위한거니까. 도착(Arrival)과 출발(Departure), 닫힘과 열림, 현재와 미래가 맞물려 도는 이야기는 마치 헵타포드들의 문자처럼 위도 아래도 앞도 뒤도 없는 원형의 이야기가 된다.
- 영화는 대략 이렇게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언어는 인간의 사고를 규정한다. 그리고 우리는 인간과 다른 언어 체계를 갖는 헵타포드들의 언어, 즉 시제도 문장의 시작도 끝도 없는 완결된 원의 형태로 형상화 되는 언어를 배움으로써 선형적 시간이 지배하는 언어 질서의 틀을 벗어날 수 있다. 비선형적 언어와 사유의 자유를 얻게 될 때, 그래서 미래의 일까지 다 알 수 있게 될 때 우리는 어떻게 삶을 살아나갈 것인가? 루이스는 딸에게 말한다. "It's unstoppable." 그래도 멈출 수 없는 이 삶. 앞으로 자신에게 닥쳐올 슬픔, 불행, 절망을 모두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함께하는 사랑의 기쁨, 행복, 환희를 껴안으려고 하는 루이스의 겸허한 강인함. 그리고 이 굳건한 다짐에 기반하여 피어나는 소통가능성에 대한 믿음. 이 믿음은 결국 세계마저 구원한다.
- 이 믿음을 나이브하다고 할 수 도 있겠지만, 그래도 대책없는 무조건적인 낙관이 아니라는 점이 이 영화의 진짜 매력일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루이스가 외계인과 첫 소통에 성공하는 장면은 곱씹을 수록 재밌다. human이라고 말하면서 얼굴을 보여주기 위해 방호복을 벗어던지는 그녀.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얼굴을 선명히 드러낸 채 헵타포드의 몸인 촉수(?)와 투명한 벽을 가운데 두고 처음으로 “컨택트”하는 순간에 비로소 이루어지는 한 걸음의 전진. 시간의 선형성이 해체되어 하나의 원처럼 통합된 헵타포드의 언어에 다가가는 그 순간에도 모든 존재는 (루이스도, 헵타포드도) 여전히 그들의 몸에, 탄생과 죽음, 삶의 시작과 끝을 잇는 선형적 시간의 진행에서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물질적(corporeal) 몸에 매여 있는 것이다. 결국 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 또 구원하는 것은 결국 헵타포드의 언어가 아니라(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방문은 일방적 선물이 아닌 미래의 호혜를 위한 초석이다) 이 극복할 수 없는 역설을 받아들이는 존재의 의지이다. 영화의 가장 극적인 장치가 “죽음”인 이유도 아마 이와 관련있지 않을까. 작품에서 “죽는” 인물들, 희귀병에 스러진 루이스의 딸 뿐만 아니라 세계를 구하는 유언을 남긴 중국 장군의 부인, 심지어 군인들의 공격에 희생당한 헵타포드 한 마리(?)의 존재는 모두 이 역설을 보여준다. 그 누구도 태어난 이상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비록 몸은 소멸을 향해 달려가는 시간에 굴복하더라도, 그들의 삶이 남긴 흔적은 원형의 언어처럼 빙글빙글 돌면서 남은 이들의 삶과 기억에 함께 한다.
- 에이미 아담스가 아닌 다른 배우가 루이스 역을 맡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아예 불가능하다. 비루한 말로는 표현이 도저히 불가한 그 섬세함. 바람에 휘날리는 잔머리 한 올, 푸석한 피부 각질 한 톨 모두 그녀가 연기하는 루이스의 아우라에 완벽하게 통제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그 눈빛. 유약해보이면서도 미세한 동요의 한 꺼풀 뒤에 자리잡고 있는 끝모를 단단함. 배고픈 맹수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결국 그를 돌려세우는 토끼나 사슴 같달까. 어째서 아카데미 후보에조차 오르지 못한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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