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행> / 2016년 7월 21일 



- 머리만 식혀주면 된다, 라는 애초의 기대보다 훨씬 재미있게 봤다. CG의 만듦새, 지나치게 짜맞춘듯한 인물 설정과 조합, 후반부의 늘어짐 등등, 단점도 없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2016년의 한국이라는 리얼리티가 영화에 조밀하게 또 단단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게 이 영화의 최대 강점 아닐까. 세월호와 메르스 같은 거대한 사회적 인장은 물론이거니와, 포털 실시간 검색어로 '좀비'라는 단어를 보여주는 방식이나, 하늘에서 내려온 감염자들이 덮치는 한가로운 풍경이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청년들이라는 작은 장치들까지. 한 가지, 영화를 보다보면 누가 죽고 누가 살지는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지만, 재난의 상황에서 고등학생들이 죽는 것은 특별히, 어쩔 수 없이, 더 슬프다.  



- 일상적 경험에의 인식에 균열을 내어주는 것만으로도 영화 표값인 만원 한 장의 효용으로는 충분하다는 기준에서도 좋은 영화였다. KTX 탈 일은 없으니, 당분간은 지하철 칸 사이의 문 사이로 누군가가 넘나들때 쳐다보게 될 것 같다. <괴물>을 보고 난 뒤에 한강 다리와 고수부지가 결코 전과 같아보이지 않듯(무엇보다 이 영화를 보고 <괴물>을 떠올리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무 생각없이 스치던 일상의 공간이 그로테스크한 재난의 현장으로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을 품는 것만으로도 나의 일상은 좀더 불온해지고 은밀해질 수 있다. 



- 그러고보면 지하철에서 다른 칸으로 이동할 때 문을 여는 방식이 열차마다 다르다. 손잡이를 직접 잡고 약간의 힘을 써서 돌려야 하는 방법과 그냥 버튼을 누르는 방법. 근데 내가 타는 5호선은 거의 전자인듯? 그동안은 손잡이를 잡을 때마다 찝찝해 했는데 앞으로는 문 여는 방법을 모르는 좀비들이 저쪽 칸에 득실거린다면 뭐 이정도 수고쯤이야, 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 <히말라야>에 이어 이번에 정유미가 맡았던 역 또한 그저 그렇게 휘발되기 좋은 역 아닌가 했다. 물론 설정 자체에서 오는 한계, 구조와 보호의 대상으로 남을 수 밖에 없는 점은 아쉽지만. 그녀가 배우로서 가진 고유한 힘이 대규모 상업영화에서도 생각보다 클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그녀에게 기대되는 역할이 고착화 되지는 않으려나 하는 (내가 하기에는 쓸데없는) 우려도 들지만. 



- 그간 턱 없는 곤충형 얼굴이라며 공유가 멋있다는 생각은 잘 안 했는데, 이번 영화보고 좋아졌다 히히히. 하지만 30대 후반(추정) + 펀드매니저 (밥먹을 시간도 없어서 책상에서 버거와 콜라를 먹는다) + 유부남 (이건 추가적이긴 하지만, 여튼) = 그런 날렵한 허리선? 이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등식이다. 



- 수안이도 너무 매력 있다. 까만 피부, 까만 속눈썹 안에 가지런히 자리잡은 까만 눈동자, 자동으로 쓰다듬고 싶어지는 까만 머리칼. 앞으로 그 까망까망함 잃지 않고 잘 컸으면.  



'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컨택트>  (0) 2017.03.04
<맨체스터 바이 더 씨>  (0) 2017.02.22
<너의 이름은>  (0) 2017.01.30
<라 라 랜드>  (0) 2016.12.23
<환상의 빛>  (0) 2016.08.1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