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불붙었던 촛불이 이제는 거의 다 태워진 것 같다.
그렇게 기다리던 탄핵 심판 최종 판결. 올것 같지 않던 그 날이 드디어 오는구나.
2014년 4월 16일이 기억난다.
오전에 전원구조되었다는 뉴스를 보았고, 그날 따라 일이 많았었던 것 같다. 그런 사건이 있었다는 것도 까맣게 잊고 허둥지둥 5시 반 수업에 갔더니 도대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던 교수님의 우울한 토로를 듣고나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으니까. 손바닥만한 핸드폰으로 도저히 믿겨지지 않은 뉴스들을 읽으며 얼이 빠진채로 11시쯤 집에 도착했다. 거실 티비에는 시커먼 바닷물과 반쯤 잠긴 배가 나오고 있었고, 그제서야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어떡해 어떡해만 울먹이며 뉴스를 보다 잠이 들었고, 이틀 뒤에는 타고 있던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기울며 불이 천천히 꺼지는 가운데 벽에 붙어있던 손잡이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꿈을 꿨었다.
2016년 12월 9일.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는 강연을 듣고 있었고,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었다는 소식이 알림으로 떴다. 옆자리 친구에게 화면을 보여주면서 우와! 하고 웃었었지.
3월 10일 금요일 11시. 어디서 어떻게 소식을 맞이해야 할까.
그간 미약하게나마 함성을 보태기 위해 몇 차례 들렸던 광장의 사진을 본다.
11월 12일. 민중총궐기 날. 아무생각 없이 걷다보면 맨 앞에 가게 된다더니 꼭 그렇게 됐다. 내자동 로터리의 차벽을 앞에 두고 한참을 앉아있었다.
11월 19일. 처음으로 꽃 스티커가 등장한 날. 스티커는 사실 별 생각없이 받았는데,
나중에 이걸 떼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을 보면서 기분이 미묘해졌다.
행진을 막아서는 거대한 벽 앞에서도 우리는 "민폐조차 끼치지 않는 평화시민"이 되어야 하는걸까.
12월 3일. 내 기억이 맞다면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는 개소리에 반발한 횃불(!)이 이 때 처음으로 등장했을 것이다.
이런 멋진 대응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활동가들의 노력에 다시 한번 감탄하고 감사했던 날. (이거 따라다녔더니 좀 덜 추웠어요...)
국회의 탄핵안 표결을 앞두고 있었던 때였던지라 다른 때보다 훨씬 비장하고 서슬퍼런 결의가 말그대로 공기에서부터 느껴졌다.
뜨거운 분노를 차가운 이성으로 간신히 누르고 있던 이날의 광장이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송박영신의 구호가 울려퍼진 날, 또 혼참러로서 조금 외로웠던 날.
뭣보다 이날은 정말정말 추웠다. 꼬박 두 시간 반을 밖에 있었더니 몸이 녹는데 그것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는.
결국 1, 2월 집회는 시내 나간김에 두어번 서성대는 수준에 그쳤다.
3월 4일 집회. 탄핵 선고 전 마지막 집회가 될 것 같아서 저조한 컨디션에도 불구하고 광화문으로 기어나갔다.
비록 행진할 때까지 버티기엔 몸이 안 따라줄 것 같아서 그냥 광장 주변에서 파노라마를 몇 장 찍고,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왔지만.
봄을 예감케 하는 날씨 덕분이었을까, 이 고생도 슬슬 끝나간다는 기대감 덕분일까, 사람들의 표정도 밝았다.
그들의 온갖 추잡스런 방해와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긴 겨울을 버텨내준 시민들의 인내와 위엄이 꼭 빛을 보기를.
"When they go low, we go high"라는 미셸 오바마의 어록은 광장을 지키고 채워준 시민들을 위한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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