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4>
자신의 핏속에서만 용감하게 달리던 흑기사가 있었다
그때 아홉개 조각난 얼음에 찔린 듯
그때 뜨겁고 붉은 입속에서 찌르던 것들 사라졌다
말할 것이 많았다 말할 것이
없었다
모든 것은 행동으로 환원되었다
검은 벽
검은 별과
검은 병이 뒤척이던
향기 나는 몸뚱이의 지진
그때 모든 이들은 노래할 이유가 없었으므로
그때를 향해 가수의 입술은 피어나고
우리는 지나간 허기에 대해
닫힌 대지처럼 굳게 입을 다문다
진은영, <<훔쳐가는 노래>>,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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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처럼 차갑고 피처럼 뜨거운 감각의 롤러코스터를 타던 시간들. 무수한 말과 감정이 끓어올랐지만 이것들이 형체를 찾아 분출되는 순간은 결국 일부였다.
적혀 있는대로, 당시의 허기는 이제 지나간 것이 되었고, 그때에도 말해지지 않은 것, 행동으로 환원되지 않은 것은 여전히 내 속에 묻혀있다.
나 대신 노래해주는 시인의 입술이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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